2025년 다해 1월 24일 금요일 † [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마르코 3,13-19
<신앙생활 오래 해도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
라이언 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목사로서 약 20년 동안 신앙과 사역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2013년, 그는 “하느님 없이 보낸 1년”이라는 실험을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신앙에 대한 점진적인 의심과 불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벨은 자신의 갈등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제 신앙을 더 포용적이고 자비롭게 만들고자 했지만, 그럴수록 기독교가 감당할 수 있는 경계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속한 교회가 동성애자나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과 타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실험에서 벨은 기도와 교회 출석을 포함한 모든 종교적 관행을 중단하고,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무신론의 세계로 들어가고 무신론자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1년간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하나님을 어떤 일의 근원이라든지 나 자신이나 어떤 이의 삶을 바꾸어줄 희망이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기대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을 때,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는 이 여정을 기록하며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깊은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단순히 신념 체계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식을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성, 연민, 정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상했습니다.
“제가 신앙 안에서 소중히 여겼던 많은 가치들 — 친절, 관대함, 평등에 대한 헌신 — 이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여전히 실천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1년이 끝난 후, 벨은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책도 읽고, 깊이 생각하고, 신앙과 무신앙 양쪽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제가 믿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라이언 벨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벨은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며 다시 거의 무신론자가 되는 수많은 냉담자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둘을 뽑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가 열둘을 임명하셨으니, 그들이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낼 권한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뽑으시는 세 가지 이유는
a. 함께 있게 하시고 = 기도하게 하시고,
b.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 선교 사명을 주시며,
c.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성령의 선물을 주고자 하심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라이언 벨의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분명 뽑혔으니 주님과 함께 머물렀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 사명으로 ‘파견’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파견 받으면 주님께서 성령의 힘을 주시는데 이를 통해 주님을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성 요한 보스코의 삶을 돌아봅시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 베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그의 가족은 생계를 위해 애썼습니다.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그에게 강한 신앙심을 심어주며, 어려운 시기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밝고 쾌활한 성격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요한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능했지만, 그는 훗날 자신의 부르심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참새 같았다. 내 마음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목적에 따라 계획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아홉 살 때 꾸었던 생생한 꿈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싸우고 소리치며 욕설을 퍼붓는 소년들로 가득 찬 들판을 보았습니다. 그때 흰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친절과 사랑으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이 꿈은 그의 삶 내내 그를 떠나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인도하고 돌보겠다는 그의 사명을 형성했습니다. 그는 이 사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라는 확신을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들을 내 손에 맡기셨다. 그분은 내가 이들을 인도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가길 원하신다.” 그의 이러한 목적의식은 그가 어려움을 견디고 자신의 사명을 지속하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힘을 깊이 믿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우리의 노력은 어둠 속의 화살과 같습니다.”
그는 성체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사역을 위한 힘과 지침을 얻었습니다.
그는 소년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체와 마리아께 가까이 있으십시오. 그러면 여정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은 보스코의 삶에서 놀라운 사건들과 열매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오라토리오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보스코는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부유한 후원자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필요한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 보스코는 한 중병에 걸린 소년이 나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말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느님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소년은 회복되었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돛을 채우는 바람과 같습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한 모든 것 안에서 성령의 힘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파견 받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성령으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기도할 것이고, 기도한다면 그 부르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사명을 찾으려 할 것이며, 사명에 순종하면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0,10-12)
주님께 파견 받았다고 믿어야만 성령의 도우심이 주어집니다. 라이언 벨처럼 목사로 살아도 매일 기도로 파견 받지 못하면 목사가 되어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매일 미사를 하거나 기도를 마칠 때,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나의 사명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결심하고 나가서는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에서 파견이 빠지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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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