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119

2025년 다해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1-16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에 반드시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벳자타 못 환자의 치유 사건은 다양한 병고와 상처로 신음하는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요 희망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그 환자는 1년, 2년, 10년도 아니고 장장 38년 세월 동안 심각한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겨우겨우 기어다닐 수 있었던 그는 매일 벳자타 연못가로 나왔지만, 치유는 희망 사항일 뿐, 그 오랜 세월 그저 들것에 드러누워 누군가의 손길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40세 전후였습니다.사실 우리도 몇십 년 전만 해도 60세가 되면 오래 살았다며 회갑 잔치까지 했었습니다.어쩌면 ..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3월 31일 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4,43-54 내가 누군지 알아야 있어야 할 곳이 보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언자는 당신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나자렛을 떠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카나라는 동네로 가십니다. 그 동네에서 카파르나움에서 온 왕실 관리를 만납니다. 그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의 실망 때문인지,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며 부정적인 표현을 하십니다. 그러나 왕실 관리는 계속 졸랐고 예수님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는데, 그 종들에게 아이가 살아난 시간을 묻자 바로 그 시간에..

2025년 다해 3월 29일 토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9일 토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루카 18,9-14 겸손하고 진솔한 세리의 기도>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께서 수시로, 사사건건 강한 대립각을 세우시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란 말은 ‘~로부터 분리되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바리사이들의 머릿속에는 자신들이 죄인들이나 이방인들, 불결한 사람들과는 철저히 분리되는 존재, 하느님으로부터 선별된 거룩한 존재라는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러한 바리사이들의 선민의식과 우월감,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신앙을 절대 그냥 못 넘기셨습니다. 눈에 띄는 즉시 그들의 말씀 따로 삶 따로의 이중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교만..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6일 수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마태오 5,17-19 하늘에서 정해질 나의 위치: 나는 타인에게 어떤 비전을 주는가?> 얼마 전 어떤 모임을 하는데, 한 자매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말씀드릴 예화가 그에 해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디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런웨이라는 유명 패션 잡지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의 비서로 일하게 됩니다.미란다 프리슬리는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큰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미 미란다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에밀리가 있었습니다. 에밀리는 처음 앤디를 무시하며, 그녀의 부족함을 지적하고는 “..

2025년 다해 3월 24일 월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4일 월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루카 4,24ㄴ-30 이토록 비상식적이고, 이토록 비인간적인 시대가 조속히 마무리되길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뇌리 속에 강력히 각인된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그런 자부심을 지닌다는 것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과도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택받지 못한 이민족들은 사람 취급도 안 했습니다. 이민족들을 상종하지 말아야 할 존재들, 동물 중에서도 개로 취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특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지니고 있었던 순혈주의, 율법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위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

2025년 다해 3월 18일 화요일 † [자] 사순 제2주간

2025년 다해 3월 18일 화요일 † [자] 사순 제2주간  복음: 마태오 23,1-12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만나기만 하면 강력한 경고 말씀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강도 높은 날 선 발언의 이유들은? 거룩함을 가장한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말과 실제 삶 사이의 큰 간극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이중성 때문이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강력한 경고 말씀 앞에 저 역시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도, 요즘 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덕에, 그리고 조금 나이가 든 덕에, 이런 측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시골에 살다 보니 어깨 힘줄..

2025년 3월 17일 월요일 † [자] 사순 제2주간

2025년 다해 3월 17일 월요일 † [자] 사순 제2주간  복음: 루카 6,36-38 완전한 용서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많이 들어본, “뿌린 대로 거둔다.” 법칙입니다. ‘부메랑’ 법칙이라 해도 될 것입니다.법칙은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심판받지 않으려면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러나 그것이 잘 됩니까? 잘 안됩니다. 영화 ‘밀양’에서는 신앙으로 용서를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불편한 상황을 잘 그..

2025년 다해 3월 16일 일요일 † [자] 사순 제2주일

2025년 다해 3월 16일 일요일 † [자] 사순 제2주일  복음: 루카 9,28ㄴ-36 귀찮더라도 또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야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단 가운데 핵심급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 세명,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타볼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정상에 도달한 제자들은 잠시 후 기상천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스승님의 얼굴과 분위기가 평소와는 완전 다른 모습, 거룩하고 태양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놀라움의 시작일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전설로만 여겨왔던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대 예언자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장차 이루어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핵심 제..

2025년 다해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2025년 다해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복음: 루카 6,39-45 사실 내 흠결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한데...> 젊은 수도자들의 수련장 역할을 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련장은 수도회의 미래를 책임질 후배 수도자들의 전반적인 양성을 책임져야 하니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수련장은 이태리어로 Maestro, 영어로는 Master, 그러니 말마디 그대로 스승이요, 바꿔 말하면 수도자들을 만드는 장인(匠人)입니다. 주로 주어지는 일은 미우나 고우나 늘 수련자들 곁에 붙어있으면서 제발 인간 되라고 잔소리하는 일입니다. 목표치를 설정해 주고 밀어붙이면서 자극도 줘야 합니다. 그러나 마냥 그래서는 어린 수사님들이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때로 상담가가 되어 위로도 해줘야 하고 격려도 해줘야..

2025년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2025년 다해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복음: 루카 6,39-45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운명> 어느 나라건 어느 회사건 눈먼 인도자를 가진 시민이나 직원들의 운명은 그 인도자의 운명과 같게 됩니다.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잘못된 인도자를 뽑아 망하고 마는 나라의 예는 수도 없습니다.예수님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오늘 복음은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