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59

2024년 12월 1일 일요일 † [자] 대림 제1주일

2024년 다해 12월 1일 일요일 † [자] 대림 제1주일  복음: 루카 21,25-28.34-36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빛이 떠오른다.> 오늘 복음은 실상 세상의 마지막 때를 예언하고 계십니다. 세상 마지막 때는 고통의 때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람의 아들이 권능을 떨치며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입니다. 마지막은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목동들은 그 마지막 때에 아기 예수님을 만나 위로를 받았습니다.당시 목동은 가장 보잘것..

2024년 11월 30일 토요일 † [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2024년 나해 11월 30일 토요일 † [홍]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복음: 루카 21,34-36 심판 때 그리스도 앞에 설 힘은 기도로 얻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 오늘 복음에서 종말의 긴 말씀 가운데 마지막 당부가 나옵니다.“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 대부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 앞에 설 힘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그러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힘은 곧 그분의 뜻을 따랐느냐에 의해 생겨납니다. 중동에서 남편들이 나가 돈을 보내줄 때 아내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아껴 쓰면서 자녀를 잘 키워 몇 년 만에 남편이 돌아올 때 기쁘게 김포공항에 나가는가 하면, 어떤 자매들은 남편이 돌아올 때 도망..

2024년 11월 27일 수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2024년 나해 11월 27일 수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복음: 루카 21,12-19 박해가 아니라 박해받지 못함을 두려워해야!> 저는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신부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그때 거기 있던 대부분 신부들이 저를 안 좋게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살이 아니라 ‘순교’라고 어떤 분은 저를 야단치듯 말했습니다. 저는 어쨌거나 ‘자살은 자살 아닌가?’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더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미국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낙태를 찬성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체를 거부한 사제가 있었습니다.그 사제는 분명 바이든 대통령의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저의 이도 저도 아닌 입장으로 박해를 피한 태도가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이런..

2024년 11월 26일 화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2024년 나해 11월 26일 화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복음: 루카 21,5-11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때 종말이 오는 이유>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기후 위기는 없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다만 해수면이 좀 높아져 오션뷰가 좋은 부동산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옳을까요? 저희가 살던 곳은 장마 때만 되면 물난리를 치러야 하는 시골이었습니다.제가 태어나던 해에도 물난리가 나서 저는 포대기에 싸인 채 집 지붕을 뚫고 헬기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비행기를 타 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른들은 장마 때는 초긴장을 하셨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피난을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른들끼리 연락을 주고받던 기억이 납니다.다른 것보다도 냇가가 불어나서 그것이 제방을 무너..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2024년 나해 11월 25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복음: 루카 21,1-4 봉헌은 고통스러워야 효과가 있다.> 오늘 복음은 과부의 헌금입니다. 예수님은 액수로는 얼마 안 되지만, 전 재산을 바친 과부를 많은 재산 가운데 일부를 봉헌하는 부자들과 비교하십니다.봉헌의 더 큰 효과를 누가 더 받을까요? 봉헌의 효과는 무엇일까요?사랑을 실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심판의 기준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1976년은 중국 전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당시 중국 탕산시에는 인구 70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지진이 일어나 23초 만에 24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가히 저주라 할 만한 대재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었던 일본 대사는 충격적인..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 [녹] 연중 제33주간

2024년 나해 11월 23일 토요일 † [녹] 연중 제33주간  복음: 루카 20,27-40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사두가이들의 부활 논쟁입니다. 사두가이들은 현세주의자들입니다.이들도 이스라엘 사람으로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다음 세상이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들이 부활을 믿지 못한 이유는 자신들이 집착하는 것을 잃기 싫어서입니다.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은 것입니다.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과 믿지 않는 사람의 삶은 그래서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부활을 믿지 않으려는 사두가이들을 피터 팬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라 여기고 싶습니다.피터 팬은 어른이 되기를 원치 않는 대명사입니다.피터 팬은 ..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1월 22일 금요일 †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 19,45-48 기도하는 집: 로고스가 레마가 되는 집>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십니다.그리고 ‘기도하는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비판하십니다.그리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이 곧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부모님의 성전이었습니다.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L.A. 올림픽 때 다이빙 금메달을 딴 한 중국 선수는 자신이 금메달을 딴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이 선수는 본래 다이빙 선수가 아니었고 100m 육상 선수였습니다.이 선수는 시합 때마다 자주 넘어졌고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2024년 나해 11월 21일 목요일 †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 마태오 12,46-50 누군가를 내 뜻 안에 머물게 하려면> 오늘은 성모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전승에 의하면 성모님께서 3살 때 요아킴과 안나로부터 성전에 봉헌되었다고 합니다.이는 당시 동정녀들을 성전에서 키우며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것을 준비하던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을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제물로 성전에 봉헌한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성전에 봉헌된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에 봉헌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누구의 집에 살려면 그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그러니 하느님의 집에 봉헌된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에 봉헌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

2024년 11월 20일 수요일 † [녹] 연중 제33주간

2024년 나해 11월 20일 수요일 † [녹] 연중 제33주간  복음: 루카 19,11ㄴ-28 감사 한 미나를 열 미나로 늘리는 법> 오늘 복음은 ‘미나의 비유’(루카 19,11-28)입니다. 한 미나는 100데나리온, 약 1000만 원 정도의 가치입니다. 주인은 열 명의 종에게 한 미나씩 주며 벌이를 하라고 시키고 왕권을 받기 위해 멀리 있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주인을 싫어하여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그 사람은 당연히 주인의 돈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입니다.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번 종이 있는가 하면 한 미나를 그대로 돌려주는 종이 있었습니다.그 종은 임금이 되어 돌아온 주인에게 이렇게 핑계를 댑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3주간

2024년 나해 11월 18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3주간  복음: 루카 18,35-43 십자가는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코의 소경은 구걸하며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네가 뭔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 하며 나무랍니다. 그러나 소경은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시고, 소경은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당시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할 일이 없었고 그러면 가난해서 구걸하는 신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요즘 그런 상황이라면, “예수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