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135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1주간

2025년 다해 3월 1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1주간  복음: 마태오 5,20ㄴ-26 거짓말의 결과> 먼저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만, 내일 토요일 복음 묵상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요즘 한국 자살률이 더 증가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하루에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특히 연예인들의 자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연예인들은 대중의 관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주요 요인이 한국 교육에서 감정의 아픔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에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그러나 힘든 감정을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원인을 외적인 것에서 찾게 만드는 문화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

2025년 3월 1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1주간

2025년 다해 3월 1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1주간  복음: 마태오 6,7-15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유> 어떤 분이 성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저는 절실해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당신은 꼭 들어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저는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어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당신은 하느님이 아니세요. 전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을래요….” 저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 주려 하다가도 그 사람이 그것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맡긴 것을 달라는 듯이 청하면, 왠지 기분이 상해서 해 주려던 것이 다시 주기 싫어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6,7-15)에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교인들처럼 말을 많..

2025년 3월 10일 월요일 † [자] 사순 제1주간

2025년 다해 3월 10일 월요일 † [자] 사순 제1주간  복음: 마태오 25,31-46 지옥이 없다는 헛된 희망을 주는 이들에게> 심판의 기준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짐승의 사랑의 수준이 있고, 인간, 그리고 성인들의 사랑의 수준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지옥의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도 구제받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이와 달리 엄격한 심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시지만,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에게 해준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해 드린 것이며,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하느님께 해 주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사랑은 내가 먼저 구원받아 그 사랑의 기쁨과 능력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다른 이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

2025년 다해 3월 9일 일요일 † [자] 사순 제1주일

2025년 다해 3월 9일 일요일 † [자] 사순 제1주일  복음: 루카 4,1-13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으로 인해 강건합니다!> 젊은 시절, 심각한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참다 참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꼬박 일주일간 링거주사에만 의지한 채 단식을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님은 매정하게도 제 침대 앞쪽에 ‘절대 금식’ 이란 팻말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로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이틀간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만 사흘이 지나면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매끼 식사 시간은 제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분이 병원 밥투정을 하면서 딱 한 숟가락만 뜬 식판을 물리며 ‘그냥 내어가..

2025년 3월 5일 수요일 † [자] 재의 수요일

2025년 다해 3월 5일 수요일 † [자] 재의 수요일  복음: 마태오 6,1-6.16-18 육체를 태우면, 심장은 사랑을 위해 뛰기 시작한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선과 단식과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말씀하십니다.이는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는 신앙인이 싸워야 할 세 욕망을 이기는 무기입니다.이 세 욕망을 한 마디로 육체적 욕망이라고도 합니다.이 유혹을 이길 때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덕이 맺히게 됩니다. 이 욕망에게 힘을 주는 것이 심장입니다.그런데 심장이 육체를 위해 뛸 때는 영혼을 위해 뛸 에너지를 잃습니다.심장이 육체를 위해 뛸 필요가 없어질 때만 사랑을 위해 뛰기 시작합니다.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엘리펀트 맨’은 ‘조셉 메릭’이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입니..

2025년 다해 3월 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8주간

2025년 다해 3월 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8주간  복음: 마르코 10,28-31 아마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순례 여정이지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 수도자이지만, 오늘 복음 묵상할 때마다 부끄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수시로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되풀이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비록 그 장엄한 고백이 며칠 가지 않는 선언이라 할지라도, 그의 순수한 마음과 타오르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언약과 서원을 당신께 드리지만, ..

2025년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2025년 다해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복음: 루카 6,39-45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운명> 어느 나라건 어느 회사건 눈먼 인도자를 가진 시민이나 직원들의 운명은 그 인도자의 운명과 같게 됩니다.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잘못된 인도자를 뽑아 망하고 마는 나라의 예는 수도 없습니다.예수님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오늘 복음은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우리..

2025년 3월 1일 토요일 † [녹] 연중 제7주간

2025년 다해 3월 1일 토요일 † [녹] 연중 제7주간 복음: 마르코 10,13-16 어린이의 하느님 나라는 부모다.>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십니다.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4-15) 어쩌면 이 말씀이 마르코 복음의 핵심일 수도 있겠습니다.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곧 하느님 나라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주제가 핵심입니다. 먼저 마르코가 설명하려는 하느..

2025년 2월 27일 목요일 † [녹] 연중 제7주간

2025년 다해 2월 27일 목요일 † [녹] 연중 제7주간  복음: 마르코 9,41-50 성당 다녀도 마음에 이것을 간직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육체로 살 수 있고 마음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사는 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육체로 살면 동물과 같습니다. 음란물을 보는 사람이라면 육체로 사는 사람입니다. 육체로 살면 구원될 수 없습니다. 타인을 죄짓게 하기 때문입니다.사람이 육체로 사는 이유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소금이 없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 9,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내 마음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은지에 따..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 [녹] 연중 제7주간

2025년 다해 2월 26일 수요일 † [녹] 연중 제7주간  복음: 마르코 9,38-40  며칠 전에 어떤 어르신 한 분이 저에게 정치적인 이유로 따지기 위해 찾아왔었습니다.저를 알아서가 아니라 가톨릭 전체를 좌파 편향으로 보고 따지러 온 것이었습니다.나이가 들수록 넓어지는 게 아니라 더 좁은 시각으로 편을 가르는 시각이 좀 안타까웠습니다.그러면서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이나 혹은 넬슨 만델라처럼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소위 ‘어른’이 요즘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속 좁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데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를 막아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마귀를 쫓든 마귀가 쫓겨나면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런데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