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1월 2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주간 복음: 마르코 3,7-12
<바다와 같은 주님: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은총을 주시면서도 군중과 거리를 두십니다.
군중들이 당신을 밀치는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으시려고 배를 한 척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순종’을 배우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은총을 받는 이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 은총이 독이 됩니다. 질서를 알게 하는 차원에서 은총을 받는 이에게 휘둘리면 안 됩니다.
한서진은 ‘SKY 캐슬’에서 사회적 압박과 개인적인 불안에 압도된 부모의 전형을 보여주며, 강예서에게 특히나 약한 어머니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도축장 옆에서 부산물을 팔며 등록금 내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딸 둘만 낳아 시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부잣집 가문 며느립니다. 그녀에게 공부 잘하는 예서는 그녀 자신이 그 가문에서 인정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과도한 성공 욕구와 건강한 경계를 세우지 못하는 태도는 예서가 특권 의식과 공감 부족을 키우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이렇게 서진은 예서의 인격 형성보다 외형과 사회적 인정을 우선시합니다.
서진은 예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너를 위해 모든 걸 다 했다. 넌 꼭 성공해야 해.”
이는 성공이 행복과 가치의 기준이라고 믿는 그녀의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며, 그녀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불안감을 예서에게 투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서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고 그녀의 잘못을 덮어주는 서진의 태도는 결과가 도덕성보다 중요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예서는 이를 내면화하고 어머니의 죄책감과 욕망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며,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악화됩니다.
서진이 예서의 이기적인 행동에 도전하거나 도덕적 지침을 제공하지 못한 것은 예서가 윤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정당화하고, 성공이 모든 잘못을 용서받게 한다고 믿게 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서진이 예서의 왜곡된 가치관 형성에 자신의 책임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강예서는 엄마의 유전자가 자신의 몸속에 있다는 것을 한탄합니다.
그러자 한서진은 고백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널 행복하게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들어버렸구나.” 이 고백은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약점—방임과 잘못된 우선순위—이 예서의 특권 의식과 도덕적 실명을 부채질했음을 강조합니다.
이 사례는 부모와 교육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경계를 설정하고, 자녀의 성취보다 인격을 우선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관계가 깨지고 자녀의 성격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겸손을 가르쳤어야 하는데, 오히려 자녀의 꿈에 이용당한 엄마는 그 많은 고생에도 자신을 원망하는 딸만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자녀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부모란 자녀가 부모를 존중할 수 없게 키운 부모입니다.
자녀가 나빠지는 이유는 불안과 교만 때문입니다. 불안은 다정함으로, 교만은 단호함으로 꺾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정하며 동시에 단호할 수 있을까요?
유튜브에 ‘전 세계 화제가 된 리트리버의 새끼 훈육법’이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8주 된 강아지들이 한 방에 모여있습니다. 잠시 후, 어미 견 로잘리가 들어옵니다.
강아지들은 어미를 향해 달려듭니다. 하지만 어미는 오늘 아이들에게 ‘배려하는 것’을 가르쳐 줄 참입니다. 젖을 떼야 할 때인 것입니다. 어미는 으르렁대며 단호하게 아이들을 떼어냅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겁을 먹습니다. 이제 어미는 새끼들을 다시 핥아줍니다.
그리고 훈육은 끝났습니다. 이것을 보면 느껴지는 것은 ‘다정하지만, 단호하다.’입니다.
자연 안에서 이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바다’일 것입니다. 바다는 다정합니다.
해변에서 놀도록 얕은 파도를 보내주고, 배가 고프면 맛보라고 맛있는 물고기도 줍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새끼까지 깡그리 잡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지구 온도 조절이 안 돼서 인간도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바다는 단호할 때도 있습니다.
커다란 파도와 해일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만듭니다.
무한한 보물을 가지고 언제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만, 인간에 의해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단호할 땐 단호해집니다. 인간은 바다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그래서 바닷사람들은 바다에 나가기 전 각자가 믿는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바다는 우리에게 말하는듯합니다.
“어, 와서 놀아! 얼마든지 내어줄게. 근데 까불면 죽는다~!”
하느님도 우리 안에서 이와 같으십니다. 무한한 바다와 같은 사랑을 지니셨지만, 동시에 인간과의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는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바다에 빠지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바다를 무시하지 않게 해야 할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많은 은총을 주시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그런 교만이 생기면 손해는 인간이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과 거리를 두시는 것입니다.
‘이빨 보이던 댕댕이가 한순간 얌전해진 까닭’이라는 유튜브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발 닦는 것을 싫어하는 댕댕이는 주인이 발을 닦아줄 때 으르렁거립니다.
주인은 몇 번을 참아주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립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조용해지고 심지어 웃는 표정까지 짓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개에게 계속 은혜만 주면 그 은혜가 개를 망칠 뿐입니다.
다정함과 함께 단호함은 꼭 필요합니다.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이것이 은총을 주는 이의 자세입니다.
사제가 그래야 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그래야 합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자기 안에 바다를 품고 있으므로 그것을 보며 다정하지 않을 수 없고 단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이웃을 대해야 하는지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