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1월 9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복음: 루카 4,14-22ㄱ
<희망이 없어도 희망합시다. 혹독한 시련 가운데서도 꾸준히 희망합시다!>
바야흐로 2025년, 정기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희년을 공식 선포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올 한 해 우리 모두가 ‘희망의 순례자들’로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이기에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표현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올 한 해 희망이 없어 보여도 희망하며, 깊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부단히 희망하는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희년의 주체이자 주관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당신과 함께 하는 매일 매 순간이 희년임을 장엄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희년을 시작하는 우리를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초대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순례자는 단지 걷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지닌 사람, 그중에서도 확실한 목적지를 지닌 사람이어야 하고, 성스러운 목적지를 지니고 있을 때라야 순례에 힘이 붙고 피곤한 여정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희년이 시작되면 몇 가지 관련 행사가 뒤따릅니다. 전대사의 은혜 부여, 그에 따른 성지나 성당 순례... 그중에 첫 번째 이루어지는 행사는 성전 문을 여는 것입니다. 작년 성탄 전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활짝 여시면서 희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에 대한 광주대교구 김정용 베드로 신부님의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희년이 시작될 때 성문을 여는 상징 행위는 교회가 우리의 소유나 배타적인 장소가 아니라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아버지의 집,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누구나 흔쾌히 환대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장소요 표지여야 한다. 그러니 그 누구도 교회의 소유자인 양 행세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손님,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세상에서는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부비고 살며,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상,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사는 사람들의 연대 공동체인 것이다.”
신부님께서는 계속해서 오랜만에 맞이한 너무나 은혜로운 이 희년을 영원한 순례자인 우리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명쾌하게 소개하고 계십니다.
“희망의 순례는 그저 자기만족이나 유희만을 위한 휴가나 수박 겉 핥기 식의 여행과 같은 것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성지나 성당을 방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희망의 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나서는 여정이다. 교회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이다. 인간이 둘러쳐 놓은 모든 장벽, 모든 경계, 곧 모든 형태의 차별과 혐오의 문화, 배타성과 불평등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순례는 그저 고행이 아니다. 마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설레고 신나는 여정이다.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을 만나는 행복한 여정이다. 예수님의 순례가 그러하였다.”(김정용, 희망의 순례자들, 바오로딸)
가치나 의미, 뚜렷한 목표의식이 부여된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희망하는 것, 이 세상 것만을 희망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희망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혹독한 고통의 세월 속에서도 결국 만사를 선으로 이끄시는 임마누엘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심을 굳게 믿으며, 또다시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는 기쁨 충만한 희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