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1월 9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복음: 루카 4,14-22ㄱ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사람들이 하는 큰 실수 중에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해석은 벌써 그 안에 ‘의심’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말씀을 하시는 분보다 높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시체를 해부합니다. 이것이 해석과 같습니다. 해석은 자녀가 부모의 말에 하는 행동이 아닌 부모가 자녀의 말에 대해 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예화로, 부자가 두 아들에게 황무지 땅을 반으로 나누어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부자는 그 땅에 보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아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열심히 황무지를 팠지만, 보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 여겨 포기하고 폐인이 되었고, 한 아들은 이렇게 된 이상 농사나 지어보자고 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는 행복의 길입니다. 그 말씀을 따르면 무조건 행복해집니다. 불행해지라고 자녀를 낳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말씀은 순종하기만 하면 행복해집니다. 만약 교만해져서 해석하려고 하면 자기 뜻대로 말씀을 조작하여 결국엔 순종하지 못하게 되고 불행에 떨어집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당신께서 성취해야 하시는 ‘예언’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루마리를 펴서 읽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누가 이루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누구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헨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는 말을 엿듣습니다.
당시 유럽에 기근이 들 때 정말 아이들을 버리는 부모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헨젤과 그레텔을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헨젤은 미리 준비한 흰 조약돌로 길을 표시하여 그레텔과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는 더욱 분노하며 아이들을 다시 버리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헨젤이 빵 부스러기로 길을 표시하지만, 새들이 그것을 모두 먹어버려 길을 잃고 맙니다.
길을 잃고 헤매던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로 만들어진 집을 발견합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집을 먹기 시작하지만, 사실 이 집은 마녀의 집이었고, 마녀는 헨젤을 살찌워 먹기 위해 가두고, 그레텔을 하녀로 부립니다.
아이들은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 마녀를 속이고, 그레텔은 마녀를 오븐에 밀어 넣어 탈출합니다.
아이들은 마녀의 보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가족이 굶주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니 계모는 이미 사라졌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맞이하며 기뻐합니다.
이 동화에서 아무래도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의 상징은 마녀입니다. 마녀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하나하나 해석하여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해석해야 하는 말을 하는 대상은 결국 우리가 이겨야 살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동화에서는 처음에 어머니였다가 차차 계모로 바뀝니다.
우리가 성경을 그런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절대 참 창조자를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예언으로 받아들여 나에게서 성취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 창조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록펠러는 부자 크리스천이었지만, 수전노였습니다. 병이 들어 가난한 여자 아이의 치료비를 대 주고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이때 비로소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해석하지 않고 하나의 예언으로 자기에게서 실현시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지겠습니다.”라고 응답하고 순종했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물고기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맙시다.
그러면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을 죽여야 하는 대상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의심이 생긴다면, 그래서 돌 주머니를 차거나 빵 부스러기를 버려야 한다면, 그 엄마는 마녀처럼 불에 처넣어야 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반면 베드로처럼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다면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그분을 창조자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방황하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만나지 못한 하느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말씀을 해석하지 말고 순종할 용기를 내어봅시다.
말씀은 무엇이건 나에게서 성취될 예언입니다. 예언자는 예언이 성취될 때 자신을 보내신 분을 진정으로 만납니다. 성경은 해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에게 성취되도록 순종해야 할 예언입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