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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해 1월 10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tiragon 2025. 1. 10. 08:04

2025년 다해 110[]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복음: 루카 5,12-16

 

<우리 인간이 살길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접촉입니다!>

 

온몸에 나병이 걸린이라는 표현을 읽을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오랜 세월 익숙하게 사용되어온 병의 명칭들이 환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나 차별적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기에, 최근 대대적인 변경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에 몽고증이라고 했었는데, 특정 인종을 비하한다는 지적에 WHO는 병의 발견자 이름을 따 다운증후군으로 바꾸었습니다. 간질이라는 질환은 어감부터가 좋지 않고, 사회적 낙인을 찍는 표현이기에 뇌전증으로 변경했습니다. 정신분열증은 마음의 조화가 깨어져 온다는 의미로 조현병으로 바꾸었습니다. 치매 역시 다분히 부정적 이미지가 크므로 인지저하증으로 바꾸기 위해 논의 중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역시 발병의 원인이 되는 균을 찾아낸 사람의 이름을 따 한센병이 공식 용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경 말씀 안에 차별적 언어, 낙인을 찍는 언어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볼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환자의 증세는 꽤 심각했습니다. 균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마땅한 치료제도 없던 시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깊어져 가는 상처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일, 조금씩 사라져가고 떨어져 나가는 자신의 신체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 일뿐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가 즉시 하는 일은, 혹시나 밤사이에 기적이 일어나서 내 몸이 나은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자신의 피부를 만져 보았습니다. 즉시 역시나 하며 좌절하며 들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은혜롭게도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는 치유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계신 고을로 찾아갔습니다.

 

율법 규정상 그는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뵙자마자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청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을 어기십니다. 그와 접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환자의 절박한 처지, 경탄할 만한 적극성, 예수님을 향한 굳센 믿음, 그 결과는 즉각적인 치유와 구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몸이 종기로 뒤덮인 한 가련한 인간과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하느님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환자가 지니고 있었던 수많은 죄와 상처, 종기, 고름은 뜨거운 하느님 사랑의 불꽃에 모두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태초의 보송보송한 아기 피부로 아름답게 재생되었습니다.

 

결국 죄인인 우리, 결핍과 상처투성이뿐인 우리 인간이 살길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접촉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