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137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10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1,5-13 하느님께서 기도를 빨리 안 들어주시는 이유> 오늘 복음도 역시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해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청할 때 꾸준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무언가를 청할 때 들어줄 때까지 떼를 쓰기도 합니다.그러면 엄마는 바로 줍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 얻어내는 방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밤에 손님을 맞은 친구는 먼저 자는 친구를 깨웁니다.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그러나 계속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다 줍니다. 그 친구는 속으로 ‘이 친구가 이렇게 나..

2024년 나해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0,38-42 평신도가 성화(聖化)되는 곳은 바로 이 세상 안입니다!> 전형적인 마르타 스타일인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살짝 빈정이 상했습니다.예수님께서 활동가 마르타가 아니라 관상(觀想)에 전념하는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시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깊이 있는 기도생활이나 영적 생활에 몰입할 수 없는 평신도들께서 약간 속이 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담컨대 절대 그럴 필요 없습니다.예수님의 일생을 돌아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이전, 3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평범한 평신도로서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30년의 세월은 복음사가조차 별로 쓸 말이 없을 ..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0,38-42 묵상기도 잘하는 방법: 마르타는 소리기도, 마리아는 묵상기도> 오늘 복음에 마르타와 마리아가 나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어떻게 봉사할까 걱정이 많습니다.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서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이 두 자매의 상태가 바로 걱정을 하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가끔 우리는 걱정하면서도 생각한다고 착각합니다. 생각은 내 밖에서 들어오는 좋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걱정은 자아와의 대화입니다. 생각은 곧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복음: 마르코 10,2-16 끝까지 가는 부부의 비밀: 의무가 감정을 이기게 하라.>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듭니다. 예수님께서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냐고 물으시니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마르 10,4)라고 말합니다.예수님은 이 문제를 ‘창세기’로 끌어올리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7-24 진정한 휴식은 언제 시작되는가?> 오늘 복음은 일흔두 제자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체험한 놀라운 일들을 보고하는 내용입니다.그들은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라며 자랑스러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시며,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어쨌든 복음을 전한 뒤의 쉼은 꿀 같은 기쁜 일입니다. 이들은 진정 휴식을 취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입니다.그런데 우리는 휴식을 잘 취합니까?주말에 온종일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한가요?..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12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역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 말 안에는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곧 ‘심판’이라는 뜻이 ..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51-56 분노는 지옥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킵니다.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은 자신들 편인 줄 알았으나 예루살렘으로 명절을 지내러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분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해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짖는 개와 싸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왜 개와 싸우는 것일까요?첫 번째 이유는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46-50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하늘 나라의 자리를 결정한다.> 오늘 복음에서 누가 높으냐는 것으로 제자들이 다툽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곧 포용력입니다.사람을 품으려면 자기만 크고 옳다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모든 동물과 사람들을 정말 잘 받아들입니다. 물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봅니다.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늘에서 큰 사람이 된다고 하십니다. 요한이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말렸다고 말합니다.그러자..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2024년 나해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복음: 마르코 9,38-43.45.47-48 사람 때문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하지 못하게 말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십니다.반면 당신을 믿는 이들을 죄짓게 만드는 사람은 마치 손과 같은 사람일지라도 잘라내고 눈과 같은 사람일지라도 뽑아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굉장한 포용력과 함께 굉장한 단호함을 보이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포용력과 단호함을 동시에 유지하며 사람의 애정과 미움에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능력이 한 사람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사..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9,43-45 불편하지 않은 진실은 없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기적과 이적에 놀라워하고 있었습니다.반전을 좋아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하필 이때,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스승을 따르는 기쁨에 취해있던 제자들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습니다.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해하기 싫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無知)라고 합니다.진리를 모르는 것을 영적인 무지라고 합니다.어떠한 것이든 알고 싶어 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