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61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51-56 분노는 지옥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킵니다.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은 자신들 편인 줄 알았으나 예루살렘으로 명절을 지내러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분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해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짖는 개와 싸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왜 개와 싸우는 것일까요?첫 번째 이유는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46-50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하늘 나라의 자리를 결정한다.> 오늘 복음에서 누가 높으냐는 것으로 제자들이 다툽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곧 포용력입니다.사람을 품으려면 자기만 크고 옳다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모든 동물과 사람들을 정말 잘 받아들입니다. 물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봅니다.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늘에서 큰 사람이 된다고 하십니다. 요한이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말렸다고 말합니다.그러자..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2024년 나해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복음: 마르코 9,38-43.45.47-48 사람 때문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하지 못하게 말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십니다.반면 당신을 믿는 이들을 죄짓게 만드는 사람은 마치 손과 같은 사람일지라도 잘라내고 눈과 같은 사람일지라도 뽑아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굉장한 포용력과 함께 굉장한 단호함을 보이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포용력과 단호함을 동시에 유지하며 사람의 애정과 미움에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능력이 한 사람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사..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9,43-45 불편하지 않은 진실은 없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기적과 이적에 놀라워하고 있었습니다.반전을 좋아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하필 이때,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스승을 따르는 기쁨에 취해있던 제자들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습니다.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해하기 싫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無知)라고 합니다.진리를 모르는 것을 영적인 무지라고 합니다.어떠한 것이든 알고 싶어 하지 않..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9,7-9 내 기도가 정말 기도인지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모든 소식을 전해 듣고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는다는 게 헤로데에게는 자신이 죽인 요한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기도하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입니다. 기도는 어둠에 있던 나를 점점 빛이신 주님께 들어 올리는 일입니다. 마치 어둡던 방 안에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떠다니는 먼지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처럼 주님께 다가갈수록 먼저 나의 죄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쩌면 진정한 기도가 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영화 ‘미..

2024년 9월 25일 수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5일 수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9,1-6 쉽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법칙> 언젠가 한 여자 청년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남자친구가 너무 착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연락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나도 다 이해해 주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는 것이 못마땅해서 싸우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 여자 청년은 남자가 착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내 허락 없이 어떤 남자도 만나지 마라, 응? 오빠가 전화하면 재깍재깍 받고!”“오늘은 오빠가 먹자는 거 먹고, 오빠가 보고 싶은 영화 보자.”“내일 시간 좀 내라, 바다나 보러 가자.”이런 남자를 소위 나쁜 남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남자를 만나 ..

2024년 나해 9월 2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8,19-21 언제나 깊이 새기고 곱씹고 묵상해야 할 예수님 말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 때로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기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 시대적 간극, 문화나 언어 습관의 차이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의 시선이 지극히 인간적이거나 편협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나자렛 출신으로 마리아에 의해 잉태되시고 출산되신 한 인간 존재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인해 잉태되신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지극히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

2024년 9월 23일 월요일 †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2024년 나해 9월 23일 월요일 †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복음: 루카 8,16-18 성경 말씀을 더 깊게 이해하고 깨닫는 유일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고 하시며, 반드시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인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하십니다.그러며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만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성경의 앞뒤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앞에는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가 나옵니다. 말씀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뒤의 내용은 진정한 당신의 참 가족은 당신의 핏줄이 아니라..

2024년 9월 21일 토요일 † [홍]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2024년 나해 9월 21일 토요일 † [홍]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에페소 4,1-7.11-13  복음: 마태오 9,9-13 자비를 입은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상을 만들려는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그는 승리한 왕과 같은 형상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는 뒤로 젖혀있고, 두 팔은 위엄 있게 하늘을 향해 들려져 있었습니다.왕이신 그리스도의 강하고 권위 있는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조각상이 완성되던 날 “이것이야말로 나의 걸작이 될 거야.”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날 밤 짙은 안개가 그 지역에 끼여, 물보라가 조각가 방의 열려진 창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습기가 조각을 상하게 하여, 아침에 본 조각은 매..

2024년 나해 9월 19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4주간

2024년 나해 9월 19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4주간 복음: 루카 7,36-50​​이 세상에 상처나 흠결, 과오나 흑역사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때로 그 흠결이나 과오가 너무 깊고 커서 걱정합니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내가 과연 주님 나라에 합당하기나 할까? 그런데 요즘 와서 드는 생각,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난 우리 삶 안에서 너무나 깊이 아로새겨져 문신처럼 사라지지 않은 상처가 때로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는 나의 결핍과 약점을 상기시키기에 나를 거만하지 않게 만듭니다. 겸손하게 만들고 결국 나를 하느님과의 만남에로 인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오랜 세월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온 한 가련한 여인, 상처로 인해 늘 아파하고 갈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