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4월 16일 수요일 † [자] 성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오 26,14-25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특징>
오늘 복음에서 가리옷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기 위한 작전을 벌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할 파스카 상을 차립니다. 예수님은 식사 자리에서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유다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묻고, 예수님은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하십니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이것은 성경에 예언된 예언입니다. 다시 말해 유다도 예언이 되어있고, 유다 자신도 그 예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구약부터 예언된 시편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듭니다.”(시편 41,10)
예수님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물음에 성경의 예언대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자기 말만 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 것은 유다입니다. 자신의 말과 예언 중에 자기 말을 더 신뢰하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운명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운명입니다.
자기 의견에 빠져 묻지만 듣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밀링거 대주교는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의 가톨릭 사제로, 주로 구마 사제로 유명했습니다.
정말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제2의 예수라 불릴 정도로 신자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황청에서 중책을 맡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생각이 더 옳아서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통일교와의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통일교 신자인 한국인 여성 성 마리아와의 결혼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문성명을 찾아가서 결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라는 말씀을 들은 것이겠지요.
유다도 예수님 앞에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성경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이 더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예언이 유다의 죄를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체중계에 매일 올라가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체크하지 않으면 제대로 느끼지 못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합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점검하지 않으면 큰 병에 걸려도 마지막에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생각을 믿지 않게 하는 말씀에 자기를 자주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내 생각에 대한 신뢰를 줄이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자주 저울에 올라갈수록 더 겸손해집니다. 매번 자기 생각이 틀림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왕관을 절대 벗지 않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사실 임금님의 머리에는 당나귀 귀가 달려 있었지만, 들키면 큰 벌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아 아무도 그 비밀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이발사가 임금님의 귀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두려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속이 답답해, 들판에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뒤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대나무가 자라나 바람이 불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고, 백성들은 모두 그 비밀을 알게 됩니다. 임금님은 화가 났지만, ‘어차피’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되자 오히려 귀를 드러내고 백성들과 신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임금님의 ‘당나귀 귀’보다 자애로운 정치와 열린 마음을 더 소중히 여겼고, 임금님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부끄러움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 생각을 누르게 할 수 있을까요?
물어보고 응답받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저는 십일조를 실천해 본 것이 가장 큰 체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 결국엔 순종함으로써 겸손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말씀에 신뢰를 두고 내 생각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물을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도 마찬가입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위해서 성경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겸손해지기 위해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합니다. 겸손해지기를 원하는 이들은 잘 듣습니다. 내 귀를 막는 존재는 내 안의 교만한 뱀입니다.
그러니 겸손해지려는 의지를 가집시다. 그러면 말씀이 잘 들립니다.
착한 뜻이란 곧 자신을 버리고 겸손해지려는 마음입니다.
좋은 뜻을 가진 이들만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