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11일 화요일 † [녹] 연중 제5주간 복음: 마르코 7,1-13
<교회가 얼마나 세속에 물들었는지 알아보는 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하면 세속의 법과 인간적인 욕망에 물들지 않고, 본래의 사명인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남을 수 있을지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마르코 복음 7,1-13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하느님의 계명보다 인간의 전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핑계로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마르코 7,6-7)
예수님께서는 신앙이 외적인 형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계명은 오직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예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을 코르반이라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전통으로 무시하는 지도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영화 ‘대부’는 인간이 자신이 타락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망가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마이클은 코를레오네 가문이 하는 마피아 사업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군에서 명예롭게 복무하고 돌아온 젊은이로, 아버지인 돈 비토 코를레오네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폭력과 범죄를 통해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경쟁 조직의 공격을 받고 중태에 빠지자, 마이클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보호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경쟁 조직의 두목과 부패한 경찰서를 살해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복수였지만, 이 살인은 그를 범죄 조직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됩니다.
마이클은 이탈리아로 도피해 한동안 평화로운 삶을 꿈꾸지만, 자신이 저지른 폭력이 결국 자신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는 도피한 곳에서 사랑하는 여인 아폴로니아와 결혼하지만, 적들의 복수로 인해 그녀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사건은 그를 더욱 냉혹하게 만들었고, 이제 그는 더 이상 사랑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힘과 통제에 집착하는 인물로 변해갑니다.
결국 마이클은 미국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부가 됩니다.
그는 점점 더 권력에 집착하며, 가문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자신의 형제와 친구들마저 의심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형 프레도를 배신자로 의심하고 결국 제거하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은 마이클이 자신의 형제마저 용서할 수 없는 차가운 인간이 되어버렸음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이제 그는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클은 혼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조직을 확장하고 가문의 안전을 지켰지만, 정작 자신에게 남은 것은 고독과 상실뿐입니다.
그의 아내 케이는 그를 떠났고,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준 사람들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한때 가족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일을 한다고 믿었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구약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8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식하면서도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모습을 질책하십니다.
그들은 “우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불평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너희가 단식하는 그날에 제 일을 찾아다니며 일꾼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구나… 너희가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나눠 주고, 집 없는 가련한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며,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그때에 네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리라.” (이사야 58,3-9)
19세기 프랑스의 성 빈첸시오 드 폴은 당시 부유층과 결탁하며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던 교회를 바라보며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주님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바쳐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신앙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지키고 교회가 세속의 법에 물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이웃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황금으로 장식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서 빛나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주위에 늘어날수록 나는 세상 법에 오염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고립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줄어들수록 나 자신은 병들어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로 둘러싸인 교회는 절대 오염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교회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이들이 줄어든다면 그 교회는 분명 타락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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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