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1월 3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복음: 요한 1,29-34
<완전히 죽는 순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고, 참 삶의 길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너무나 두렵고 경이로운 이름, 절대 신성시되는 이름, 그래서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이 하느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공개적으로 외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변방 나자렛 출신, 목수 요셉의 아들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외쳤으니, 유다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분노와 혼돈이 일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한마디로 목숨을 건 증언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세례자 요한의 이 간략한 증언 한 마디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운명에 대해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광대무변한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느님,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세례자 요한은 그분을 향한 표지이자 상징으로 ‘어린양’이란 호칭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 사가들의 상징조차 사자, 독수리, 황소 등으로 표상되는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 붙인 칭호가, 공룡이나 호랑이가 아니라, 고작 어린양이라니요!
양은 수많은 동물들 가운데 대표적인 초식동물입니다. 힘없고 빽 없는, 그래서 틈만 나면 맹수들에게 쉽사리 잡혀 먹히는 약한 동물의 대명사입니다. 그런 양들 가운데서도 갓 태어난 어린 양에다 예수님을 갖다 붙이니, 참으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생각하니, 어린양보다 더 잘 들어맞는 호칭은 다시 또 없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 여정을 쭉 따라가 보니, 단 한 마디로 표현해서, 더도 덜도 말고, 딱! 어린양의 삶을 철저히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생에 걸쳐 철저하게도 고수하셨던 기본 노선은 비폭력 평화주의였습니다.
한 마리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모두를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올라서지 말고 내려서라고! 움켜쥐지 말고 손을 펴라고! 이기려고 기를 쓰지 말고 한번 져보라고! 살려고 발버둥 치지 말고 한번 죽어 보라고!... 완전히 죽는 순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고, 참 삶의 길이 시작될 것이라고.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