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4월 7일 월요일 † [자] 사순 제5주간 복음: 요한 8,12-20
<그 풋풋했던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충만했던 첫 순간으로 돌아갑시다!>
오늘 첫 번째 독서는 그 유명한 수산나 이야기입니다. 바빌론 유배 시절 요야킴의 아내이자 힐키야의 딸인 수산나는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비록 조국이 멸망하여 바빌론까지 끌려와서 유배 생활을 하는 처지였지만 수산나의 부모는 그 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잘 교육시켰습니다. 남편으로 만난 요야킴은 넓은 정원이 딸린 대 저택에서 살던 부자였지만 성품이 좋아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자연스레 유배 시절 유다 고관대작들이 요야킴의 집을 자주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최고 사법권을 지닌 두 명의 원로도 요야킴의 집으로 출근하다시피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소송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로 찾아왔기에, 요야킴의 집 마당은 임시 법정처럼 활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원로이자 재판관은 나이나 지위, 직무에 걸맞지 않게 음흉하고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지위와 공권력을 이용해 가난하고 백성들을 돕기는커녕 협박하고 사욕을 채웠습니다, 특히 힘없는 여인들에게 꼼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고는 자신들의 노리갯감으로 마음껏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원로들의 눈에 수산나가 목표물로 포착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러했듯 두 사람은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사전 조율까지 마치고,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용기 있는 수산나의 완강한 저항에 가로막혔습니다. 그렇다고 물러날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법꾸라지’였던 두 사람은 또 다른 계략을 세워 수산나를 법정에 세웠고, 거짓 증언을 했으며, 마침내 수산나에게 사형까지 선고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이런저런 얄팍한 법 기술을 휘두르며 ‘슈퍼 법꾸라지’로서의 실체를 온 세상에 드러낸 그의 얼굴이 겹쳐지니, 참으로 서글픈 마음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는 아주 젊은 청년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십니다. 그가 두 노회한 법관들을 향해 던진 경고의 말씀이 참으로 섬뜩합니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다니 13, 52-53)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경고성 말씀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이 먹어가면서 초심을 망각하고 본분을 잃어버리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대목에서 아시시 프란치스코가 겪은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입니다. 프란치스코와 열두 제자가 수도회 회헌회칙을 인준 받기 위해 로마 바티칸에 도착합니다. 화려하고 청결한 교황청 안으로 허름한 수도복에 신발도 신지 않은 청년들이 우르르 들어오니 둘러서 있던 사람들, 특히 화려한 복장을 한 추기경들, 대주교들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습니다. 제일 높은 단상에는 인노센트 3세 교황이 앉아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인노센트 교황 앞에 무릎을 꿇은 프란치스코는 라틴어로 된 회헌회칙을 어색하게 더듬더듬 읽기 시작합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다들 투덜거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들고 있는 회헌회칙을 던져버리며 예수님의 산상 설교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그리고 가난, 겸손, 소박한 삶, 원수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발언은 ‘들에 핀 나리꽃이 어떻게 자라는지에 대해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어 일어납니다. 즉시 근위병들을 불러 프란치스코와 제자들을 밖으로 끌어내게 합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무거운 망토를 벗고 난 인노센트 교황이 큰 소리로 그들을 다시 데려오라고 외칩니다. 높은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온 교황은 프란치스코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 사제였을 때,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았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단순함과 열정, 드높은 이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노회한 교회 관리자요 운영자로 전락했습니다. 초기의 그 밝았던 빛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프란치스코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의 맨발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습니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다 보면 대체로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심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근본, 자신의 원천을 망각합니다. 처음 세운 목표도 잃어버리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헷갈려 합니다. 힘든 작업이 분명하겠지만, 매일 아침 우리는 첫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풋풋했던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충만했던 시절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