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5주일 복음: 루카 5,1-11
<우리 내면을 주님으로 가득 채울 때!>
물때가 좋을 때면 근처 수로로 밤낚시를 나갑니다. 낮에는 잔챙이들이 활개를 치지만, 희한하게도 밤이 되면 씨알 좋은 녀석들이 슬슬 활동을 시작하지요. 밤바다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참 좋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풍어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허사일 때도 수두룩합니다. 미끼를 싱싱한 것으로 갈아도 끼워보고, 수심도 바꿔보고, 자리도 옮겨보고, 움직임도 줘보고, 별의별 짓을 다해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인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의 심정이 백이십 퍼센트 이해가 갑니다.
시몬과 다른 제자들이 딱 그랬습니다. 큰 기대를 안고 밤새도록 애썼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거듭 반복된 헛 그물질에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누군가가 괜히 말 걸었다가는 큰일 날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건네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그 말씀을 들은 시몬은 속으로 웃었을 것입니다. 고기잡이의 문외한인 예수님께서 고기잡이 전문가인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신 것이 참으로 고깝게 들렸을 것입니다.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의 내면의 표현이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루카 5,5)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참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전문가적 판단에서 도저히 안 될 것이라는 것,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결과는? 인생 한방이라고, 초대박이 터졌습니다. 그야말로 긴 연장전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역전 만루 홈런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그물질에 오랜 실패가 만회되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비참한 내 인생,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외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십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열어주십니다.
‘철저한 실패로구나. 쫄딱 망했구나.’라며 좌절하고 울부짖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저 함께 현존하십니다. 딱 한 말씀으로 그간의 어려웠던 국면을 180도 전환시켜 주십니다. 다 끝난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조금 기다려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주님께서 다가오실 것입니다.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희망해야겠습니다.
전문직 어부였던 시몬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씀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부도 아닌 예수님, 고기잡이에는 전혀 문외한인 예수님께서 고기잡이 분야만큼은 프로인 시몬에게 전혀 설득력 없는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보라고 권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기존의 사고방식, 개인적인 야욕,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라는 말씀이겠지요. 과도한 욕심, 사사로운 감정에서도 벗어나라는 권고이겠지요. 예수님이란 너무나 큰 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크게 버려야 가능한 일이니만큼 모든 것을 다 바꾸란 말씀이겠지요.
그릇은 무엇이 담기냐에 따라 그 그릇의 품위까지 달라집니다. 아무리 멋진 그릇이라 할지라도 애완견 사료를 담아놓으면 개밥그릇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투박한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보물이 담기면 보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질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로 여겨질지라도, 우리 내면을 예수님으로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값진 존재가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