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14일 금요일 †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복음: 마르코 7,31-37
<어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귀먹은 사람이요, 말 더듬는 사람입니다!>
‘에파타!’ 복음을 접할 때마다, 제 지난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수도회 입회 전까지만 해도, 저는 도통 말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말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당연히 말주변이나 말재주가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제 모습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꿔다 놓은 보리 자루!’
어떤 장소를 가든, 어떤 모임에 가든 저는 조용히 한구석에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거의 투명 인간처럼 그렇게 지냈습니다. 학창 시절 제 생활기록부에 단골로 적혀있던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조용한 성격, 남 앞에 나서기를 지극히 꺼려 함,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탐...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가 생각을 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 몇십 년 만에 해후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제가 주도한 한 강좌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바뀌어버린, 제 모습에 강의 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크게 변화된 제 모습을 보며, 주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 신앙 여정 안에 ‘에파타!’라고 외치시며 저를 치유하셨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또 다른 깨달음, 또 다른 시야를 지니도록 계속해서 ‘에파타!’ 작업을 지속하고 계심을 굳게 믿습니다.
올바른 목적을 설정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놀랍게도 주님께서 힘을 보태주십니다. 선한 의지를 갖고, 한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서, 혼신의 노력을 하면 기적이 가능합니다. 제대로 한번 변화되어 보려고, 제대로 한번 눈을 떠보려고, 제대로 한번 깨달음에 도달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다 보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선한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귀를 열어주시고, 혀를 풀리게 하는 사랑의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기적은 오늘 우리 안에서도 되풀이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 듣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솔직히 놓치며 살아가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동료 이웃들의 음성을 통해 전해지는 성령의 목소리를 놓치며 살아갑니다. 주변에서 매일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통해 전해지는 시대의 징표를 놓치며 살아갑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말, 꼭 필요한 말, 반드시 해야 할 말은 하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또 다른 귀먹은 사람이요, 말 더듬는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주님의 한 말씀, ‘에파타!’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