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다해 12월 6일 금요일 † [자] 대림 제1주간 복음: 마태오 9,27-31
<슬픈 예감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게 하는 믿음이 있다.>
왜 슬픈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 걸까요? 왜 부정적인 예측은 항상 현실이 될까요?
이런 가사의 노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이해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현 대통령이 한밤중에 계엄 선포를 하였습니다. 군대가 국회를 난입하여 무언가를 장악하고 방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루 만에 감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행인 것은 국회의원들이 당일 회의를 위해 대부분 서울에 머물고 있어서 신속하게 과반수 이상 모일 수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국회에 통보하지 않고 계엄을 선포해 소위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려 하였다면 이는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내란죄의 수장과 깊이 관련된 이들에 대해서는 사형이나 무기징역과 같은 벌에 처합니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은 왜 자기 운명을 이렇게 재촉하는 것일까요?
그가 사는 세상은 무언가 두려움의 세상입니다. 자신과 가족을 음해하려는 종북세력이 넘쳐나는 환경에 놓인 것입니다. 거의 망상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상황의 판단이 안 될 때 생기는 감정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내가 잃을 게 많다는 잘못된 믿음과 나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이들이 많다는 잘못된 두 믿음의 결합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두려워하면 두려운 일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 하나만 뽑으라 하면 저는 이것을 뽑고 싶습니다.
이 원칙은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법칙을 믿지 않습니다.
아마 윤 대통령이 많이 갖지 못했을 때는 그만큼 두려움도 적었을 것입니다.
감사원장, 서울 지검장 탄핵 결의가 있는 날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는 대통령 관저와 김건희 여사와 직결되는 사항이었습니다. 사실 예산안에 대한 것은 거의 700조에 가까운데 심의에서 4~5조 조정안에 관련된 것이라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설사 이유가 된다고 해도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하는 것을 가지고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할 사유는 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컸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사람은 자기가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때는 아무것도 가질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을 아는 게 믿음입니다.
이번 계엄은 대다수 전문가가 볼 때 국가 혼란 상태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대로 되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믿으라는 말씀일까요? 오늘 두 소경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눈을 뜨게 할 능력이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어디까지 믿어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고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나를 고칠 수 있는 분은 나를 창조한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곳에 흔들 다리를 만들고 유리로 아래가 보이게 하는 관광지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즐깁니다.
놀이 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가끔 사고도 나지만, 교통사고 날 확률보다 적기 때문에 그런 것을 즐깁니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만든 이가 바로 인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도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를 위험하게 만들 리 없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 온 세상의 창조자를 믿기 전까지는 완전히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두려우면 두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물론 긍정적인 믿음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두려움은 우리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믿어야 합니다.
무엇을? 바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망가지면 고치실 수 있고 죽으면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믿을수록 우리는 평화를 얻고 그 평화가 우리를 선하게 만들고 온유하게 하며 결국엔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창조자를 믿어서 손해 볼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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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