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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1-16 순종을 위해 가슴을 찢은 만큼 은총이 스며든다.> 저는 항상 교회에 반항하며 살았습니다. 처음에 사제가 되고자 하는 부르심을 어렸을 때부터 받기는 하였습니다. 25살까지 저항하였습니다. 계속 저항했다면 사제가 되는 축복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신학교 때는 유학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거부의 의사를 밝혔습니다.어쩔 수 없이 승낙하기는 하였으나 교수와의 갈등으로 논문도 힘겹게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 순종이 없었다면 성서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어서 다시 유학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싫다고 하였습니다.그랬더니 주교님이 한 달 기도해 보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역시..

2025년 다해 3월 31일 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3월 31일 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4,43-54 혹독한 인생의 시련 앞에서...> 사목자로 살다 보니 은혜로운 체험들을 많이 합니다. 그중 한 가지가 세상 한가운데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형제자매들과의 만남입니다. 그분들의 때로 흥미진진한 지난 이야기들, 때로 슬프고 충격적인 스토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많이 배웁니다. 때로 공감도 해드리고, 때로 함께 울며 위로도 해드리는 그런 순간들이 저를 더 성장시키는 축복된 순간입니다. 이 한세상 살아가다 보면 그 누구든 예외 없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인생의 풍파를 만나게 되고 좌절도 겪게 됩니다. 때로 그 시련이 너무나 혹독해, 도대체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가, 한탄도 하게 됩니다. 오늘 ..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3월 31일 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4,43-54 내가 누군지 알아야 있어야 할 곳이 보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언자는 당신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나자렛을 떠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카나라는 동네로 가십니다. 그 동네에서 카파르나움에서 온 왕실 관리를 만납니다. 그의 아이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의 실망 때문인지,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며 부정적인 표현을 하십니다. 그러나 왕실 관리는 계속 졸랐고 예수님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는데, 그 종들에게 아이가 살아난 시간을 묻자 바로 그 시간에..

2025년 다해 3월 30일 일요일 † [자] 사순 제4주일

2025년 다해 3월 30일 일요일 † [자] 사순 제4주일  복음: 루카 15,1-3.11ㄴ-32 복된 죄!> 강론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강론하시는 것을 너무 행복해하는 한 시골 작은 본당 주임 사제에 얽힌 사연입니다. 하필 그 주일 복음 내용이 ‘탕자의 귀환’ ‘작은아들의 비유’였습니다. 신부님은 ‘이게 웬 떡이냐?’며 일주일 전부터 명 강론을 준비하고 또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주일 교중 미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치밀하게 준비하고, 세밀하게 손까지 본 강론 보따리를, 존재 자체로 고맙고 사랑스러운 신자들, 백 퍼센트 어르신들인 교우들께 신나게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작은아들이 얼마나 불효자인지? 그가 아버지를 떠나가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그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불경스러운..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 [자] 사순 제4주일

2025년 다해 3월 30일 일요일 † [자] 사순 제4주일  복음: 루카 15,1-3.11ㄴ-32 회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탄의 가장 큰 계략> 이무석 교수의 책에 ‘작은 눈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던 한 여자의 사연이 나옵니다.그녀는 사회에서 이름만 대면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여성이라고 합니다.그런데 그녀가 정신분석학 대가인 이무석 교수를 찾아왔습니다.그녀의 고민은 남편이 자신과 같은 완벽한 여자를 두고 술집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입니다.그녀는 남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오면 1시간마다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보고, 혹시 거짓말이 아닌지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라고 하였습니다.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그 여자를 만나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전날 꿈을 꾸었는데 ..

2025년 다해 3월 29일 토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9일 토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루카 18,9-14 겸손하고 진솔한 세리의 기도>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께서 수시로, 사사건건 강한 대립각을 세우시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란 말은 ‘~로부터 분리되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바리사이들의 머릿속에는 자신들이 죄인들이나 이방인들, 불결한 사람들과는 철저히 분리되는 존재, 하느님으로부터 선별된 거룩한 존재라는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러한 바리사이들의 선민의식과 우월감,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신앙을 절대 그냥 못 넘기셨습니다. 눈에 띄는 즉시 그들의 말씀 따로 삶 따로의 이중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교만..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9일 토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루카 18,9-14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천사들도 하느님 앞에서는> 제가 보좌 2년 차 되던 해의 일이었습니다. 이제 본당 주임신부로 나가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많은 계획을 짜고 있었고 하면 잘 할 것 같은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백화점에 갔다가 나와서 성당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는데 한 냉동 탑차가 제 옆에서 달리면서 잠깐 차를 세워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차를 세웠습니다.직원들이 입는 단정한 옷을 입고 말하기를, 자신들도 저 백화점에 납품하고 나오는데 상품이 몇 개가 남는데 싼값에 사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들어가서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는 제주도 옥돔 박스를 보았습니다.마침 명절도 다가..

2025년 다해 3월 28일 금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8일 금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마르코 12,28ㄱㄷ-34 하느님 마음을 잡읍시다. 그분을 감동시킵시다!> 제 어린 시절 집집마다 가축을 키워 내다 팔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때 경험 많은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닭을 잡을 때는 날개를 잡으면 끝이다. 토끼를 잡을 때는 귀를 잡으면 꼼짝 못 한다. 고양이는 목덜미를 잡으면 쉽다.” 그 대목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개는? 같이 사는 개들에게 실험을 해봤습니다. 꼬리를 꽉 잡았더니 엄청 으르렁댔습니다. 개는 잡지 말고 그냥 쓰다듬어주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할까요? 손목을? 머리를?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그 어떤 부위든 신체 접촉을 아예 안 하는 게 좋습니다..

2025년 3월 28일 금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8일 금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마르코 12,28ㄱㄷ-34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 오늘 복음은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잘 알지만, 잘 하지 않는 계명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무엇을 바치고 있으며,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나의 무엇을 희생하고 있나요?이 계명에 목숨을 걸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봐야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작품입니다.주인공 월트 코왈스키는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에서 수십 년간 일한 후 은퇴한 참전 용사로, 보수적이고 고집이 세며, 인종차별적 성향을 지닌 노인입니다. 한..

2025년 다해 3월 27일 목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2025년 다해 3월 27일 목요일 † [자] 사순 제3주간  복음: 루카 11,14-23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길만 온전히 걸읍시다!> 주님께서 총애하셨던 이스라엘 백성과 당신 사이의 관계를 묵상하다 보면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둘 사이의 관계가 때로 자상한 아버지와 막 나가는 막내아들 사이 같습니다.또 어쩌다 보면 착하고 충실한 남편과 지속적으로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는 불충실하고 부도덕한 아내 사이 같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그 눈길, 그 마음은 그야말로 절절합니다. 사랑을 넘어섭니다.결국 애증(愛憎), 사랑하기에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주님 당신만 바라봐 줬으면 좋겠는데,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가지 말아야 할 엉뚱한 길로 샙니다. 아무리 돌아오라 외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