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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나해 10월 2일 수요일 † [백] 수호천사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2일 수요일 † [백] 수호천사 기념일 복음: 마태오 18,1-5.10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 나를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극(史劇)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호위무사(護衛武士)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왕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무예나 검술이 뛰어난 민첩한 사람을 호위무사에 임명합니다. 이 사람의 행동의 특징은 은밀함입니다. 언제나 왕 근처에 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과 온몸의 신경은 언제나 왕의..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 [백] 수호천사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2일 수요일 † [백] 수호천사 기념일 복음: 마태오 18,1-5.10 먼저 자기를 멸시하지 않고는 타인을 멸시할 수 없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작은 이들을 멸시하지 않아야 하는 이들이 그들이 수호천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란 뜻입니다. 여기에 타인을 멸시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멸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위 ‘땅콩 회항’과 같이 나의 위치로 타인을 멸시하는 행위는 이미 자신이 자기를 멸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가..

2024년 나해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51-56 힘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칩시다!> 한류 열풍의 기세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되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특히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지속적으로 끌고 있다는 것, 정말이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K-드라마나 영화, 가요인데, 그저 흥행만을 추구하며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지나치게 폭력적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풀라는 의미인지,..

2024년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일 화요일 †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51-56 분노는 지옥으로 가는 길의 이정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킵니다.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은 자신들 편인 줄 알았으나 예루살렘으로 명절을 지내러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분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해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짖는 개와 싸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왜 개와 싸우는 것일까요?첫 번째 이유는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

2024년 나해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46-50 걱정이나 근심, 유혹이 다가올 때면 즉시 성경을!> 언젠가 진심으로 성경에 매료되어 목숨 걸고 성경을 공부하던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교구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이런저런 성경 공부 과정을 빼놓지 않고 수료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지긋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2년 과정의 가톨릭 교리신학원까지 졸업했습니다. 제가 그분께 여쭈었습니다. “형제님, 평생토록 산업현장의 역군으로 죽기 살기로 일하셨으니, 이제는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시고, 운동도 나가시고, 좀 여유 있게 지내시면 좋을 텐데, 어찌 그리 성경을 파고드십니까?” 형제님 왈, “그동안 제 안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사방천지를 헤매 다녔지만..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9월 30일 월요일 †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9,46-50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하늘 나라의 자리를 결정한다.> 오늘 복음에서 누가 높으냐는 것으로 제자들이 다툽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겸손은 곧 포용력입니다.사람을 품으려면 자기만 크고 옳다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모든 동물과 사람들을 정말 잘 받아들입니다. 물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봅니다.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늘에서 큰 사람이 된다고 하십니다. 요한이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말렸다고 말합니다.그러자..

2024년 나해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2024년 나해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복음: 마르코 9,38-43.45.47-48 이주민과 난민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합시다!> 오늘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오늘 그분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이나 시선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날입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께서도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신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난민이셨던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도 예수님께서는 어디 한 군데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철저한 이방인이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이주민이나 난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쁘게 포용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주에 단체로 예멘 난민이 입국한 때가 있었습니다. 난리..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2024년 나해 9월 29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복음: 마르코 9,38-43.45.47-48 사람 때문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하지 못하게 말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십니다.반면 당신을 믿는 이들을 죄짓게 만드는 사람은 마치 손과 같은 사람일지라도 잘라내고 눈과 같은 사람일지라도 뽑아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굉장한 포용력과 함께 굉장한 단호함을 보이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포용력과 단호함을 동시에 유지하며 사람의 애정과 미움에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능력이 한 사람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사..

2024년 나해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9,44-45  꽃 같은 시절은 잠시입니다. 코헬렛 저자의 삶과 신앙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그는 인생의 산전수전과 우여곡절을 다 겪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현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 살고 있었지만, 이 세상을 초월해서 살던 사람, 인생의 지혜와 경륜으로 충만했던 스승이었습니다. 그런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과 권고는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빛나는 보석 같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고, 틈만 나면 연필로 꾹꾹 눌러 필사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코헬렛 말씀을 묵상하면서 개인적으로 크게 반성하게 됩니다. 나는 나름 인생을 좀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어려운 ..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2024년 나해 9월 2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5주간 복음: 루카 9,43-45 불편하지 않은 진실은 없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기적과 이적에 놀라워하고 있었습니다.반전을 좋아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하필 이때,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스승을 따르는 기쁨에 취해있던 제자들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습니다.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해하기 싫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무지(無知)라고 합니다.진리를 모르는 것을 영적인 무지라고 합니다.어떠한 것이든 알고 싶어 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