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공유/Faith 150

2024년 나해 10월 18일 금요일 †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024년 나해 10월 18일 금요일 †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루카 10,1-9 사랑과 자비의 루카 복음서!> 저도 젊은 수도자 시절 해외 선교 열망으로 활활 불타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학부를 졸업하고, 사목 실습을 시작할 때, 장상들에게 제발 좀 선교지에서 실습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장상들 눈에는 제가 선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답은 언제나 묵묵부답, 너무 답답해서 부르짖으면 겨우 오는 답장은 먼저 한국에서나 잘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를 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그런 열망이 남아있기에, 선교지로 훌훌 떠나는 후배 형제들을 보면 얼마나 부럽고 대견스러운지 모릅니다. 한번은 오지 중..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024년 나해 10월 18일 금요일 † [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루카 10,1-9 선교의 방법?: 매력적인 공동체를 먼저 만들라!> 오늘은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성 루카는 바오로 사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리고 성모 마리아에 대해 어떤 복음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였고 가난한 이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철저한 자료수집을 통해 복음서를 쓰고 또 바오로 사도와 베드로 등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사도행전으로 기록하였습니다.그는 이렇듯이 사도단 안에 머무르며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 실천은 없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선교의 열정이 이전보다 많이 ..

2024년 나해 10월 17일 목요일 †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7일 목요일 †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 11,47-54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내 삶의 뿌리를 살펴봅시다!> 혹시 지금까지 이 세상 살아오시면서 혹시라도 누군가로부터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인 있는가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야! 빨리 그 가면을 벗어라!”라든지 “인생을 그따위로 살지 마라!”라는 식의 충격적인 말.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가슴이 부들부들 떨릴 것입니다. 복수심에 이를 갈 것입니다. 어떻게라도 반격하고 되갚아 주기 위해 골몰할 것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쌍날칼 같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7일 목요일 † [홍]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 11,47-54 나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언자들을 죽인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들의 조상이라 말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질책하십니다.이는 당신도 예언자이기에 그들이 당신도 똑같이 죽일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조상으로 삼지 말고 하늘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조상으로 여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조상이면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그러면 조상이 한 그대로 살다가 조상이 저지른 모든 죄까지 벌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황당하게 들렸을까요? 조상까지 나무라는 예수님을 살려둘 수는 ..

2024년 나해 10월 16일 수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2024년 나해 10월 16일 수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복음: 루카 11,42-46 정작 필요한 정결은 내면의 정결, 마음의 정결, 눈의 정결입니다!> 오래전부터 유다인들이 목숨 걸고 준수해오던 정결 예식, 사실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인 관습이었습니다. 팬데믹 시대를 거쳐오면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손을 잘 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정결 예식은 얼마나 극단적 형식주의로 치달았던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결 예식은 한마디로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규칙입니다. 특히 자칭 거룩한 존재로 여겼던 바리사이들은 정결례에 관한 규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규칙이 또 규칙을 낳..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2024년 나해 10월 16일 수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복음: 루카 11,42-46 ​자기 영광을 추구하면 누구나 불효자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노아는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고는 더워서 벌거벗은 채로 잠을 잤습니다. 장막 안으로 들어온 함이 아버지의 알몸을 보고는 밖에 있던 두 형제, 셈과 야펫에게 알렸습니다.셈과 야펫은 함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알몸을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으로 들어왔습니다.그리고 자신들의 겉옷으로 아버지의 몸을 덮어드렸습니다. 노아가 잠에서 깨어 이 사실을 알고 함은 저주하고 셈과 야펫은 축복해 주었습니다.왜 함은 저주를 받은 것일까요? 아버지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불효입니다.아버지가 벌거벗고 자는 것은 물론 창피한 일입니다.그러나 아..

2024년 나해 10월 15일 화요일 †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5일 화요일 †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11,37-41 캄캄해도 희망하십시오!> 일반 교우들뿐만 아니라 의외로 많은 사제 수도자들이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하시는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 같이 진한 하느님 체험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곤경 중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느님께서는 깊은 침묵 중에 계시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하느님 부재 체험을 겪는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톨릭교회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성생활의 대가들께서도 우리와 비슷한 그런 체험을 하신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사실 데레사 성녀의 인생에서..

2024년 10월 15일 화요일 †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15일 화요일 †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11,37-41 지나친 의전이나 형식주의는 내적 탐욕과 사악의 열매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형식주의’를 비판하십니다.예수님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을 따르지 않으십니다.이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바리사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사람이 형식주의자가 되는 이유는 속이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이것을 숨기기 위해 그 반작용으로 겉은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겉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하고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그들 안에는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

2024년 나해 10월 14일 월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2024년 나해 10월 14일 월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복음: 루카 11,29-32 주님 경외할 줄 모르며, 약소국들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들의 회개가 절실합니다!> 요나가 살던 시대, 아시리아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제국이었습니다. 아시리아는 동서로는 인도에서 시작해서 이집트까지, 남북으로는 아라비아에서 시작해서 러시아까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요나가 찾아간 니네베는 당시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뉴욕이나 도쿄, 북경이나 런던 정도 되는 대도시였습니다. 웅장한 궁전과 사원들을 둘러싼 성벽은 그 위로 마차 3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었습니다. 성벽의 높이는 23미터였는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앞에는 너비가 24미터인 ..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2024년 나해 10월 14일 월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복음: 루카 11,29-32 사이비: 거짓말이 만드는 인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하는 이 세대를 악하다고 하십니다. 왜 표징만 요구하는 이들이 악할까요? 저도 사제가 되라고 불러주실 때 예수님이 나타나시든가 하는 표징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그때 새벽에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상에서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술 취해서 헛것을 본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려왔습니다. 이때 느꼈던 게 있습니다.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그 이유를 표징이 없는 것으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표징까지도 필요가 없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