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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나해 10월 7일 월요일 † [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7일 월요일 † [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음: 마르코 10,2-16 성모님과 예수님을 향한 우리 매일의 사랑 고백, 묵주 기도!>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여기저기 몸도 아팠지만, 이 길을 계속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업 땡땡이도 많이 치고, 제대로 신학 공부도 하지 못했습니다. 늘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던지라, 30년 전부터 반성하는 마음으로 매일 영성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영적 독서 책 한 권을 만나면 마치 횡재한 기분입니다. 탁월한 영성가들의 신앙과 삶, 지혜와 경험이 맞춤형으로 내 손안으로 딱 들어오니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최근에 영적 독서를 하던 중에 묵주 기도와 관련된 풀톤 쉰 대주교님의 ..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 [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7일 월요일 † [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음: 마르코 10,2-16 묵주기도 잘 바치는 법: 묵주기도는 어머니께 내미는 어린이의 손> 10월은 로사리오 성월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이 기념일이 정해진 이유는 교황 비오 5세와 교회의 묵주기도를 통한 엄청난 하늘의 개입을 온 교회가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적 사건은 이렇습니다. 1571년 그리스도교 신성 동맹은 해군력이 훨씬 우월하고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엄청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두 세력은 그리스 레판토 바다에서 결정적으로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군은 수적으로 열세였고 전투는 패배로 끝날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복음: 마르코 10,2-16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의심 없는 믿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돌아보니 불과 5~60년 전의 일입니다. 가구마다 자녀를 너무 많이 낳다 보니 인구가 너무 급증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학생 수가 너무 많아 한 반에 70명, 80명이 배정되어 담임 선생님이 학년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 이름도 다 못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 귀한 줄을 몰랐습니다. 한 명 한 명, 인격적 대우가 아니라 도매금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있는 시골은 아기 한 명이 태어나면 온 마을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마을 입구에 큰 플래카드까지 내 겁니다. 너무 귀한 아이들이다 보니..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복음: 마르코 10,2-16 끝까지 가는 부부의 비밀: 의무가 감정을 이기게 하라.>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듭니다. 예수님께서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냐고 물으시니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마르 10,4)라고 말합니다.예수님은 이 문제를 ‘창세기’로 끌어올리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2024년 나해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7-24 자만, 오만의 끝은 허무입니다!> ‘철부지’라는 단어에서 ‘철’은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 곧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런 ‘철’ 자에 한자 말인 부지(不知)가 붙으니, 결국 ‘철부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지금이 어떤 순간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 가운데만 철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철부지들이 있더군요. 예를 들면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입니다. 큰 사고가 생겨 다들 심각한 상태인데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깔깔대고 있다면 그는 철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철부지는 이런 철부지와는 약간 다른 의미의 ..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7-24 진정한 휴식은 언제 시작되는가?> 오늘 복음은 일흔두 제자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체험한 놀라운 일들을 보고하는 내용입니다.그들은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라며 자랑스러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시며,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어쨌든 복음을 전한 뒤의 쉼은 꿀 같은 기쁜 일입니다. 이들은 진정 휴식을 취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입니다.그런데 우리는 휴식을 잘 취합니까?주말에 온종일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한가요?..

2024년 나해 10월 4일 금요일 †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4일 금요일 †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복음: 루카 10,13-16 무소유의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대자유의 삶을 찾은 프란치스코!> 가톨릭 성인(聖人)이면서도 타 종교 신자들뿐 아니라, 무신론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성인이 있으니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개척한 성화의 길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는 복음서 안에 드러난 예수님의 여러 면모 가운데, 머리 두실 곳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예수님, 그래서 그 어느 곳에도 묶이지 않으셨던 대 자유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흠모하고 추구했습니다. 인간적 나약함과 유한성을 딛고, 그 위에 펼쳐진 자기 극복과 자기 해방과 자기 이..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2024년 나해 10월 4일 금요일 †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복음: 루카 10,13-16 회개: 병신 여우 짓은 그만두고 호랑이를 본받는 것> 삶의 궁핍함과 어려움에 지쳐 무작정 숲속을 거닐던 사나이가 다리 잃은 여우를 보았습니다.‘저래서 어떻게 살아있을까?’ 이렇게 궁금해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사냥한 먹이를 물고 들어와서는 실컷 먹고도 여우가 먹을 고기를 남겨 놓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도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은 여우를 먹이셨습니다. 사나이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크신 선의에 깊이 탄복하며 주님을 찬미했습니다.  ‘하느님은 저런 여우도 살리시는 분이시구나. 하물며 당신을 믿는 나야 얼마나 잘 먹이시겠나. 지금까지 먹고 살 걱정만 하며 살아온 내가 부끄럽구나.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2024년 나해 10월 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12 욥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결코 하느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이유도 모르겠는 극심한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는지요?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아무리 따지고 따져봐도 모르겠는데, 난데없이 다가온 불행 앞에 망연자실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한없이 나약한 결핍투성이의 존재로서, 한계를 지니고 살아가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땅 위에 두발을 딛고 있는 이상, 욥처럼 극도로 비참한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 이 한 세상 살아가며 이런저런 다양한 고통과 시련에 노출됩니다.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고통이 아니라 욥처럼 뼛속 깊이 사무치는 고통일 경우, 우리는 하..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3일 목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12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역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 말 안에는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곧 ‘심판’이라는 뜻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