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12

2025년 다해 4월 5일 토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5일 토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7,40-53 주님, 제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일찌감치 어린 나이에 예언자로 불림 받았던 예레미야의 인생 여정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참으로 기구하고 안쓰러웠습니다. 또래들은 다들 모여서 깔깔대고 웃고 뛰노는 그런 나이에 불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부담스럽고 막막했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주된 소명은 이스라엘 고관대작들과 지도층 인사들을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지도층 인사들 입장에서, 보아하니 머리에 피도 제대로 마르지 않은 한 아이가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

2025년 4월 5일 토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5일 토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7,40-53 성경 해석: 빛으로 빛을 보는 일> 오늘 복음은 성경 해석에 관한 요한복음의 이해를 보여줍니다. 복음사가들은 생각했습니다.‘왜, 어떤 이들은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어떤 이들은 그 반대로 나아갈까?’ 루카 복음은 그 사람 안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특별히 ‘부자와 거지 라자로’ 비유에서 이것이 잘 드러납니다.부자는 라자로를 부활시켜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 즉 성경을 믿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부활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너희들에게 표징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이 너희 눈..

2025년 다해 4월 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7,1-2.10.25-30 오늘도 거부당하시고 모욕당하시는 주님!> 드넓은 피정 센터에 할 일이 태산이다 보니, 저는 주로 장화에다, 허름한 작업복이나 추리닝 차림으로 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정 집을 찾는 분들이 헷갈려 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피정 다녀가신 한 형제님이 남기신 글입니다. “피정 센터가 언덕 위에 있다 보니 방문객들을 일일이 태워가느라 손수 봉고차를 몰지 않나, 화장실을 안내하며 신발장에서 직접 슬리퍼를 꺼내 놓는 등, 피정 센터에서 일하는 동네 직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미사 시간이 되어 제의를 갈아입고 나타나셨을 때, 아까 그 아저씨와 목소리가 똑같은 것을 깨닫고 비로..

2025년 4월 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7,1-2.10.25-30 타협하는 신앙은 매력이 없다, 그래서 희망도 없다.> 예수님께서 초막절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때 몇몇은 이렇게 말합니다.“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동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물론 본인들도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하기 힘이 듭니다. 일본은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선교로 천주교 신..

2025년 다해 4월 3일 목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3일 목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31-47 주님,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드디어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내란 사태가 종식될 순간이 다가옵니다.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돌발행동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내란성 증후군으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내란성 위염, 내란성 두통, 내란성 불안증,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수면 부족! 엊그제 안국동 시국미사 때 자주 희자되던 표현이 “잠 좀 자자!”였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어떤 집회보다 평화롭고 성숙한, 그러나 시대를 역행하는 반국가, 반민주 세력을 향한 우리 가톨릭교회의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잘 보여준 축제 한마당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운집한 수많은 사제, 수도자, 교우들은 한목소리로 백척간두에..

2025년 4월 3일 목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3일 목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31-47 믿지 못하는 건 증거가 없어서 가 아니다.> 어제 심판이나 판단, 평가는 생존과 관계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그래서 세상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사적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평가를 하려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평가를 위한 ‘증거’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무언가를 평가하려면 증거가 필요합니다.특별히 젊을 때는 판단해야 하는 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이나, 직장, 혹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이러한 결단은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에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 신중한 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배우자를 선택하기를 정말 잘하셨습니까? 고해성사 때 들어..

2025년 다해 4월 2일 수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2일 수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17-30 예수님을 고발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된 이유 두 가지!> 천부당만부당한 일, 참으로 배은망덕한 일이 오늘 복음에서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갓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작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그리고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입장에서도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일이 틀림없었습니다. 자신들의 행복과 구원,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느님께서 직접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영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할망정, 호시탐탐 그를 감시하고, 여차하면 고발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된 유다인들, 참으로 대책이 없는 인간들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

2025년 4월 2일 수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2일 수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17-30 올바른 심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 걱정 때문> 우린 흔히 사람들의 평가에 자주 휘둘리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곤 합니다.물론 그 사람들의 평가가 다 옳지는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사람이 나를 잘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사실 이 때문에 휘둘리다가 망하는 예가 한둘이 아닙니다.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대표작은 「외투」입니다. 소설은 페테르부르크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바시마치킨의 일상으로부터 시작합니다.서기관으로서 문서를 정서(正書)하는 일을 맡은 그는 다른 사람들의 무시와 비웃음에도 자기 직분에 매우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만족감은 물론 애정도 있어..

2025년 다해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1-16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에 반드시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벳자타 못 환자의 치유 사건은 다양한 병고와 상처로 신음하는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요 희망으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그 환자는 1년, 2년, 10년도 아니고 장장 38년 세월 동안 심각한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겨우겨우 기어다닐 수 있었던 그는 매일 벳자타 연못가로 나왔지만, 치유는 희망 사항일 뿐, 그 오랜 세월 그저 들것에 드러누워 누군가의 손길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40세 전후였습니다.사실 우리도 몇십 년 전만 해도 60세가 되면 오래 살았다며 회갑 잔치까지 했었습니다.어쩌면 ..

2025년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2025년 다해 4월 1일 화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5,1-16 순종을 위해 가슴을 찢은 만큼 은총이 스며든다.> 저는 항상 교회에 반항하며 살았습니다. 처음에 사제가 되고자 하는 부르심을 어렸을 때부터 받기는 하였습니다. 25살까지 저항하였습니다. 계속 저항했다면 사제가 되는 축복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신학교 때는 유학 가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거부의 의사를 밝혔습니다.어쩔 수 없이 승낙하기는 하였으나 교수와의 갈등으로 논문도 힘겹게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 순종이 없었다면 성서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어서 다시 유학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싫다고 하였습니다.그랬더니 주교님이 한 달 기도해 보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