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4월 4일 금요일 † [자] 사순 제4주간 복음: 요한 7,1-2.10.25-30
<오늘도 거부당하시고 모욕당하시는 주님!>
드넓은 피정 센터에 할 일이 태산이다 보니, 저는 주로 장화에다, 허름한 작업복이나 추리닝 차림으로 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정 집을 찾는 분들이 헷갈려 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피정 다녀가신 한 형제님이 남기신 글입니다.
“피정 센터가 언덕 위에 있다 보니 방문객들을 일일이 태워가느라 손수 봉고차를 몰지 않나, 화장실을 안내하며 신발장에서 직접 슬리퍼를 꺼내 놓는 등, 피정 센터에서 일하는 동네 직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미사 시간이 되어 제의를 갈아입고 나타나셨을 때, 아까 그 아저씨와 목소리가 똑같은 것을 깨닫고 비로소 그 사람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강론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해드리면 다들 깔깔 웃으십니다. 물론 제 옷차림으로 인해 헷갈리게 만들고 당혹스럽게 해드린 것 사과도 드립니다. 웃을 일 없는 시대, 그렇게라도 웃으니 참 좋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배웁니다. 사람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어떤 일을 하든 그 사람 존재 자체로 소중하니, 그 누구든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
이런 면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도 신원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다인들에게 당신의 정체를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 28-29)
그러나 유다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 계시 앞에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비웃음을 던졌습니다. 철저한 불신과 의혹의 눈초리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끝끝내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다인들의 모습,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자신들의 발로 차버렸습니다. 거의 다 잡은 대어를 눈앞까지 끌고 왔다가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맞이하는 예의 없고 몰지각한 인간의 모습을 보십시오.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극진히 환영해도 부족할 터인데, 그분을 완전 개무시했습니다. 갖은 협박과 완력으로 그분을 궁지로 몰고 갔습니다. 그분을 살상하려고 손에 큰 돌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살인미수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했습니다. 참으로 천부당만부당한 일을 자신들의 손으로 저질렀습니다. 끝끝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로 인한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처절한 파괴와 멸망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그 옛날 동족들에게 당하셨던 것처럼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주변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우리의 독선과 교만으로 인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 또 다른 수모와 박해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두 손으로 예수님을 성전 밖으로 밀쳐내고 벼랑 끝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