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10일 월요일 †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복음: 마르코 6,53-56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은 아이처럼 희망하라.>
어렸을 때 들었던 뉴스인데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이것입니다.
바로 아내가 버스 추락 사고로 죽었던 그곳에서 남편이 며칠 뒤에 투신하여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자살은 죄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여인이 없으면 못 살겠다는 순정남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어떤 이들은 그 잃은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평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희망’한 것이 아니라 ‘욕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희망과 욕망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자들과 그 가족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병이 낫기를 희망한 것입니다.
이렇게 희망한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병이 치유되지 않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망하지 않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희망하는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해도 포기가 빠릅니다. 아이가 엄마 옷자락을 잡고 이것저것을 사달라고 합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것은 사 주고 저것은 사주지 않습니다.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금방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이렇게 희망하는 대상이 창조자가 아닙니다. 그냥 자기 자신이 욕망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포기할 줄 모릅니다. 못내 갖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희망은 바라기도 잘하지만,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곧 포기하고 다른 것을 희망합니다.
정약용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세종대왕, 이순신 다음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었고 사실 그렇게 큰 인물입니다. 정조는 정약용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는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입니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영조와 신하들의 등쌀 밑에서 자랐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세력이 필요했고 그 방법으로 집현전이란 학문 연구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해 왕권을 굳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 정약용입니다. 정조는 정약용을 놀리기까지 하며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정조의 숙원사업인 수원성을 축조할 때 정약용이 짓게 맡긴 것은 그만큼 그를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조의 노력을 싫어했던 정치 세력들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세력을 몰아낼까 궁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발견된 것이 천주교입니다.
정조가 키운 남인과 실학자들이 천주교에 엮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정약용은 배교함으로써 간신히 죽음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관직을 떠나있어야 했습니다.
정조는 시간이 지나면 그를 다시 부르겠다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궁궐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들어가기 하루 전에 정조가 죽습니다.
절망할 수도 있는 정약용은 계속 살길을 모색하지만, 이번엔 더 큰 천주교 박해에 연루되어 정작 그는 배교했음에도 그의 가문은 벼슬길이 막히는 폐족이 되고 정약용은 무려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약용은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좌절했을까요? 그는 18년 동안 다양한 분야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 엄청난 책들을 씁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이 이 유배 생활하는 동안 이룬 것입니다. 그가 쓴 책이 몇 권인지 아십니까? 무려 500여 권에 달합니다.
약 2주에 한 권씩 책을 쓴 셈입니다.
그가 온종일 양반다리로 앉아 책만 썼기에 복숭아뼈가 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앉아서는 책을 쓸 수 없어서 일어서서 책을 썼습니다. 그의 가문이 폐족이 되었지만,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누명이 벗겨질 테니까 희망하며 공부하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자녀들은 늦게나마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원나라에 항복하겠다고 고려의 세자가 황제를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에 40년간 버틴 것도 대단하지만 황제에게 노쇠한 임금의 아들이 대신 간 것입니다.
이때 몽골의 황제는 죽고 두 인물이 서로 황제가 되기 위해 힘을 겨루는 중이었습니다.
이때 고려의 세자는 많은 정보를 수집해 앞으로 황제가 될 한 인물을 선택하여 그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이는 황제가 되는 중요한 입지를 주는 항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자도 이것을 이용해 고려는 원나라의 변발과 같은 것을 따르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항복하는 중에도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잃은 것은 잃은 것이고 희망해야 할 것은 희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희망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희망하는 자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을 희망합니다.
희망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갖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아파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모든 것을 다 줄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정약용은 실제로 희망과 믿음을 지닌 신앙인이었다고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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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