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121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2024년 나해 10월 14일 월요일 † [녹] 연중 제28주간  복음: 루카 11,29-32 사이비: 거짓말이 만드는 인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하는 이 세대를 악하다고 하십니다. 왜 표징만 요구하는 이들이 악할까요? 저도 사제가 되라고 불러주실 때 예수님이 나타나시든가 하는 표징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그때 새벽에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상에서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술 취해서 헛것을 본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려왔습니다. 이때 느꼈던 게 있습니다.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그 이유를 표징이 없는 것으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표징까지도 필요가 없었습니..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2024년 나해 10월 13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복음: 마르코 10,17-30 우울증의 시작: 가질 수 있다는 착각> 영국의 유명한 부자인 컨글튼 경이 어느 날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 말고 한숨을 쉬며 “아이고, 5파운드만 있으면…. 5파운드만….”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컨글튼 경은 그 하녀에게 5파운드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더 큰 한숨 소리가 들리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아이고, 10파운드라고 할걸. 10파운드라고 할걸….” 오늘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부유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십계명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

2024년 나해 10월 12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12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1,27-28 하느님께서 슬퍼하실 나와 그를 분리하고 배척하는 행위!> 사도 바오로의 신앙 여정은 정말이지 특별합니다. 베드로 사도와 함께 초대 교회를 이끈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뵙지도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으로부터 직접 선발된 직제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심 이후 사도로서 그의 모습은 열두 제자 못지않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복음 선포를 향한 열정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사도도 그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는 말 마디 그대로 스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가치관과 삶의 궤적, 스승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지향점 등등 그 모든 것을 자..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12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1,27-28 나에겐 주님의 뜻이 행복인가, 괴로움인가?>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동생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자로 수감돼 있는 형을 악명 높기로 소문난 교도소에 들어가 탈출시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교도소는 워낙 경계가 삼엄해서 누구도 탈출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그런데 동생까지 죄인으로 자신을 찾으러 감옥에 들어왔으니 형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동생이 온몸에 새긴 문신이 바로 그 교도소의 지도이고 완벽하게 짜인 탈출 방법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형도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됩니다. 평생을 무기징역자로 감옥에 있어야 하는 형에게 그 감옥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 자체로 행복입니다. 그리고 그 동생을..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11일 금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1,15-26 모든 바람이 이루어지게 하는 유일한 바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인들은 선을 위하여 하나가 되고 악인들은 악한 일을 위해 하나가 된다고 하시며 악마들도 악한 일에서는 갈라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청하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게 무엇일까요?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

2024년 나해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0,38-42 평신도가 성화(聖化)되는 곳은 바로 이 세상 안입니다!> 전형적인 마르타 스타일인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살짝 빈정이 상했습니다.예수님께서 활동가 마르타가 아니라 관상(觀想)에 전념하는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시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깊이 있는 기도생활이나 영적 생활에 몰입할 수 없는 평신도들께서 약간 속이 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담컨대 절대 그럴 필요 없습니다.예수님의 일생을 돌아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이전, 3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평범한 평신도로서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30년의 세월은 복음사가조차 별로 쓸 말이 없을 ..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2024년 나해 10월 8일 화요일 † [녹] 연중 제27주간  복음: 루카 10,38-42 묵상기도 잘하는 방법: 마르타는 소리기도, 마리아는 묵상기도> 오늘 복음에 마르타와 마리아가 나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어떻게 봉사할까 걱정이 많습니다.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서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이 두 자매의 상태가 바로 걱정을 하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가끔 우리는 걱정하면서도 생각한다고 착각합니다. 생각은 내 밖에서 들어오는 좋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걱정은 자아와의 대화입니다. 생각은 곧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복음: 마르코 10,2-16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의심 없는 믿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돌아보니 불과 5~60년 전의 일입니다. 가구마다 자녀를 너무 많이 낳다 보니 인구가 너무 급증했습니다. 학교에 가면 학생 수가 너무 많아 한 반에 70명, 80명이 배정되어 담임 선생님이 학년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 이름도 다 못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 귀한 줄을 몰랐습니다. 한 명 한 명, 인격적 대우가 아니라 도매금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있는 시골은 아기 한 명이 태어나면 온 마을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마을 입구에 큰 플래카드까지 내 겁니다. 너무 귀한 아이들이다 보니..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2024년 나해 10월 6일 일요일 † [녹] 연중 제27주일  복음: 마르코 10,2-16 끝까지 가는 부부의 비밀: 의무가 감정을 이기게 하라.>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 10,2)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듭니다. 예수님께서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냐고 물으시니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마르 10,4)라고 말합니다.예수님은 이 문제를 ‘창세기’로 끌어올리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2024년 나해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2024년 나해 10월 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26주간  복음: 루카 10,17-24 자만, 오만의 끝은 허무입니다!> ‘철부지’라는 단어에서 ‘철’은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 곧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런 ‘철’ 자에 한자 말인 부지(不知)가 붙으니, 결국 ‘철부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지금이 어떤 순간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 가운데만 철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철부지들이 있더군요. 예를 들면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입니다. 큰 사고가 생겨 다들 심각한 상태인데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깔깔대고 있다면 그는 철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철부지는 이런 철부지와는 약간 다른 의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