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10

2025년 다해 1월 1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주간(일치 주간)

2025년 다해 1월 1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주간(일치 주간)  복음: 마르코 2,13-17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 복음사가로 추정되는 세리 레위를 당신 제자로 부르시는 광경이 참으로 파격적이고 경이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를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선발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72 제자단의 하나로 뽑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가장 핵심 제자단이라고 할 수 있는 12사도 가운데 하나로 선택하셨습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둘러서 있던 사람들, 특히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동시에 쯧쯧 하고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단은 희망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리라는 신분에 대한 이미지는 최악이었..

2025년 1월 1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주간(일치 주간)

2025년 다해 1월 18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주간(일치 주간)  복음: 마르코 2,13-17 자신들이 죄인인 줄 아는 공동체에 머물라> 어제 복음은 네 명의 믿음이 있는 공동체 안에 머무른 병자가 죄도 용서받고 병도 치유받는 내용이었습니다.오늘 복음은 세리 레위가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는 내용입니다. 내용이 전혀 상관없는 것 같지만 마르코는 여기서 레위가 어떤 공동체에 머물렀는지를 알게 합니다. 바로 ‘죄인이며 병자임을 깨닫게 하는 공동체’에 머문 것입니다. 반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며 병자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무엇이 죄인지 알게 할 수 있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끼’(2010)는 한 타락한 형사가 사람들을 따르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목..

2025년 다해 1월 1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40-45 ‘오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첫 번째 독서 히브리서를 봉독하고 묵상하던 중 오늘따라 ‘오늘’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은혜롭고 눈물겹게 다가옵니다. 오늘이 그저 그런 하루,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영양가 없는 하루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서 오늘이 일생일대 가장 큰 축복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부끄럽게도 오랜 세월, 수많은 ‘오늘’을 그냥 허송세월하며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금쪽같은 오늘인데, 그 소중한 오늘을 즐기지도 만끽하지도 못하고 소모시켜 왔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이라는 표현에 얼마나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2025년 1월 1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40-45 내 기도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법>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어떻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이것을 통해 우리는 올바른 기도의 목적과 방법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어떤 분은 기도가 잘 안된다고 하고 어떤 분은 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찾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오늘 복음을 잘 묵상하면 우리는 나의 기도가 잘 가고 있는지, 혹은 지금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복음에서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 환자는 그리스도께서 ‘하고자 하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 곧 창조자 하느님이라..

2025년 다해 1월 15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5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29-39 일상적 버리고 떠나기!>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해 보니, 이 시대 우리 사목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고 기도하고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명확히 들어있습니다. ① 가르침. 회당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은혜로웠던지, 듣고 있던 청중들은 다들 한목소리로 그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선한 가르침이라고 감탄했습니다. 말씀은 간결하고 쉽고 단순했지만, 명쾌하고 강렬했습니다. 말씀에 힘이 있고 살아있었습니다. 청중들은 말씀을 듣고 있는 그 자리에서 말씀이 이루어지고, 해방과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 말씀 선포 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

2025년 1월 15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5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29-39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가 행복의 핵심인 이유> 이번 1월 가두 선교 때 저는 몸이 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빠졌습니다.조금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자들만 내보내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그런데 선교를 나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춥고 사람들에게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그냥 신앙생활하면 되는데 내가 왜 나서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이것을 극복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행복해서입니다. 힘든데 행복합니다.이것을 체험하지 않고는 선교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고 참 행복도 누릴 수 없습니다.우리는 미사 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란 말을 듣습니다.이 자격을 갖추고 있음이..

2025년 다해 1월 1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21ㄴ-28 극단의 신성함 앞에 극단의 사악함이 굴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의 베이스캠프였던 카파르나움에 계실 때의 일이었습니다.마침 안식일이 되어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회당 안에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십니다.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바라보는듯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달리, 예수님의 시선은 더없이 부드러웠고 따뜻했습니다.한없는 측은지심과 연민으로 가득했습니다. 참으로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고귀하고 아름다운 창조주 하느님의 시선과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 비참한 인간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

2025년 1월 1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21ㄴ-28 권위가 있는 말엔 항상 이것이 섞여 있다.> 첫 어부들을 제자로 뽑으신 예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 낚는 일을 시작하십니다.그 일을 시작하시며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은 ‘권위 있는 가르침’입니다. 복음 전파자의 권위는 ‘성령’입니다. 성령만이 악령을 쫓아낼 힘을 주십니다.예수님은 회당에 있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쫓아내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 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라며 놀라워합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과 악령을 쫓아내시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가르침은 말로 하는 것이고 악령은 성령으로 쫓는 것인데 말입니다..

2025년 다해 1월 13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3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14-20 우리의 하느님은 모든 것을 뒤집는 분이십니다!> 선구자 요한이 무대를 잘 꾸며놓고 구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일종의 바톤 터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한이 집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4-15)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인류 구원 사업의 첫 협조자인 초기 사도단을 부르십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네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첫 제자단을 부르시는 광경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볼 때, 정말이지 전격적..

2025년 1월 13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2025년 다해 1월 13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주간  복음: 마르코 1,14-20 누가 내가 체험한 ‘복음’(기쁜 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오늘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예수님은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말들은 좀처럼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복음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대답할 수 있습니까?각자가 설명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의 개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에 공통적인 해답이 이것일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