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1월 5일 일요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 루카 1,26-38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순간입니다!>
피정이 들어올 때, 제 하루 마지막 일과는 보일러실에 들러 난방 상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올라오면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세상에! 별이란 별들이 총집합해있습니다.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인생무상함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크고 위대하심 앞에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아무리 난다 긴다, 잘난체하지만, 티끌이요 먼지인 것을... 동방 박사 세 사람도 밤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박사들은 탄생하실 구세주의 별을 목격한 후, 즉시 그 멀고도 오랜 여행길을 시작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세 명의 이름은 멜키오르, 가스파르, 발타사르입니다.
당시 동방이라는 지역은 페르시아나 아라비아로 추정됩니다. 그들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거 박사란 칭호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넓게 적용되었는데, 아마도 별자리 연구를 통해 미래의 일을 예언하던 천문학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박사들의 시선은 온통 주님의 별을 향했습니다. 낮에는 휴식을, 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기약 없는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유다 지방에 이르러서는 구세주의 별빛이 사라지는 난감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박사들은 예루살렘 성읍으로 들어와서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본인 말고 또 다른 임금이 유다 땅에 태어났다는 말에 헤로데 임금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겠지요. 겉으로는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경쟁자를 신속히 해치울 계략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들은 진리의 빛이자 생명의 빛이신 메시아를 뵙고 경배 드리기 위해 오랜 나날의 수고와 갖은 위험을 감수했던 참된 순례자였습니다. 탄생하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난 후 박사들이 봉헌한 선물도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진정한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과 구세주의 희생을 상징하는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바친 봉헌의 결과로 되돌려 받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토록 뵙고 싶어 했던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경배했습니다. 멀리서부터 가져온 선물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란 우리 인생의 최종 의미를 향해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황금)을 바칩시다. 매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외치며 내 의지를 접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유향)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매일 직면하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몰약)을 기쁘게 견뎌냅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