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11월 29일 금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복음: 루카 21,29-33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기쁨의 날, 종말!>
사흘 내내 강풍을 동반한 비와 진눈깨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늘 잔잔하던 바다도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표지판이 넘어지고, 그간 용케 버티고 있던 단풍들도 모두 떨어져 내렸습니다. 순식간에 가을에서 한겨울로 넘어온 느낌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이 세상 것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물건들도, 죽고 못 살던 인연들도, 목숨처럼 중요시 여겼던 일도, 직책도, 사랑도, 젊음도 다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끝도 없이 순환을 거듭하는 자연, 부침을 거듭하는 인간사야말로 인생의 참된 깨우침을 주는 큰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진리를 명확히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이 세상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더 큰 가치와 우위성을 두고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은혜롭게도 하느님은 변화무쌍한 우리 인간과 달리 언제나 한결같고 든든하십니다. 영원불멸하십니다. 언제나 그곳에 서 계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세월의 흐름 앞에 별도리가 없습니다.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천천히 사라져갑니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태초의 상태, 무(無)로 돌아가고 맙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도 가고, 꽃다운 청춘도 다 지나갑니다. 세상도 지나가고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권세도 잠시입니다. 모든 것이 떠나가고 인간 세상과 인류 역사의 끝에 오직 한 분만 남을 것인데, 그분은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끝, 종말에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겠지만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사랑은 끝까지 남아있을 것이라는 말씀,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세상의 끝, 재림의 시기에 하느님을 거슬러 살아온 사람들, 하느님을 거부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때가 확실하다.
그러나 반대로 하느님 말씀 안에 살아온 사람, 하느님만 신뢰하며 그분만 붙들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해방의 날이자 구원의 날, 기쁨과 환희의 날이 분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공포심에 부들부들 떠는 날이겠지만, 하느님 말씀 안에 산 우리들, 그분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온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기쁨의 날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