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11월 27일 수요일 † [녹] 연중 제34주간 복음: 루카 21,12-19
<강력한 경고의 배경에는 우리를 향한 간절한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같은 연배의 형제들이 모여 앉을 때마다 참 재미있습니다. 순식간에 세월이 흐르고,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세월의 폭탄을 제대로 맞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낄낄대며 웃기도 합니다.
한번은 탈모가 급격히 진행된 한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을 안 지키셨다고. 왜? 무슨 일인데?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안 지키셨다고.
그러나 시편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또 무슨 일인데? “제 죄악 머리카락보다 많사오며...” 나는 머리숱이 많이 사라졌으니 죄도 별로 없는 게 아니냐고?
주님의 날, 종말, 재림 때의 최후의 심판... 이런 단어들을 떠올릴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공포, 두려움, 걱정, 안절부절...
자비의 하느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지니신 두드러지게 우세한 특징 편안함, 따뜻함, 친절함, 포근함과는 전혀 거리가 머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래서 종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보다 긍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됐던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가 잘 되기만 바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멸망하기보다 구원되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인내의 주님이십니다.
진정으로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자녀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자녀에게 어떻게 대합니까? 물론 자녀가 지닌 장점, 성공, 성취에 대해 크게 칭찬도 할 것입니다. 자녀의 부족함을 큰마음으로 감싸 안으며 격려와 위로도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자녀가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바보같이 처신할 때, 몹쓸 짓을 할 때는 당연히 강하게 혼도 내고, 불같이 화도 내고, 빨리 돌아오라는 마음에서 경고도 하고 질책도 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때로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시기도 하고 우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시기도, 때로 우리가 좀 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좀 더 크게 성장하라고, 그래서 더 확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경고도 하시고 채찍질도 하시는 것입니다.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여러 가지 경고성 발언 앞에 두려워하기보다 그분 말씀 뒤에 감추어진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의 등 뒤에 서셔서 우리가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뒤에서 든든한 지지가 되어주시며,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건네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7-18)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