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11월 13일 수요일 † [녹] 연중 제32주간 복음: 루카 17,11-19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수많은 감사 거리들을 찾아냅시다!>
나병으로부터 치유받은 열 명 가운데 유일하게 감사 인사를 하러 온 이방인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감사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세탁물이 산더미인데 세탁기가 자주 고장이 나서 한동안 무척 성가셨습니다.
출장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기사님 왈, 15년 됐으니 수명이 다 됐답니다.
마침 창고를 정리하다가 큼지막한 구식 통돌이 세탁기를 발굴해서 설치했더니...
세상에 시원시원 너무나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화창한 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에서 담요들을 널고 있자니, 제 입에서는 감사 기도가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우리 삶의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여기저기 얼마나 많은 감사 기도 거리가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사 기도를 바치신 흔적을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오 복음 12장 25절)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요한 복음 6장 11절)
갈 곳 없는 소녀들을 수녀님들께서 친딸처럼 양육하는 청소년보호시설 개원 기념 미사 때의 일입니다.
영성체 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우리 집에 살면서 감사할 거리 37가지'라는 묵상 글을 낭독했는데, 듣고 있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감사 기도보다는 청원 기도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이 앞서던 제가 비참해 보였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생활 안에서 감사 기도가 더 확장되면 좋겠습니다.
눈을 크게 뜨면 더 많은 감사꺼리들을 찾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육의 눈도 크게 뜨지만 영안(靈眼), 심안(心眼)을 크게 뜨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노년에 다다른 루르드의 벨라뎃다 수녀님께서 한번은 자신의 일생을 총정리하며 감사 기도를 바치셨는데, 진정한 의미가 감사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제게 발현하심에도 감사드리지만, 발현하지 않으심에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억력이 나빠 아무리 노력해도 암기할 수 없었던 제 무지와 어리석음에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원장수녀님이 저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말씀하신 것, 갖은 폭언과 차별, 굴욕의 방 처벌에 대해서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를 보고 '이 여자가 정녕 그 벨라뎃다인가?'라고 말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저라는 것과, 마치 희귀한 동물 대하듯, 바라본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제 눈앞에 나타나실 때도 감사드리지만, 나타나지 않으실 때도 감사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서 현존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이나 축복에 감사합니다.
건강과 성공에 감사합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감사 기도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 기도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극심한 고통이 다가올 때는, 주님의 수난에 깊이 참여하게 되었음에 감사해야겠습니다.
깊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을 때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까지 내려온 것에 대해, 이제 남은 것은 바닥을 딛고 올라가는 것뿐임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