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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해 5월 21일 수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2025년 다해 5월 21일 수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복음: 요한 15,1-8 진실로 원줄기이신 주님께 제대로 붙어있기는 한 것입니까?> 포도나무 비유에 대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님의 해석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뿌리박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당신께 붙어있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고자, 당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시고 당신과 결합되어 당신께 붙어있는 이들을 그 가지에 비유하셨습니다. 실상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되었습니다.” “포도나무뿌리가 가지들에게 양분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이, 성부의 외아들이신 하느님의 말씀께서도 성도들에게 당신의 신성을 나누어 주심으로..

2025년 5월 21일 수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2025년 다해 5월 21일 수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복음: 요한 15,1-8 진정한 겸손을 얻는 유일한 길> 오늘 복음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유명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포도나무는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주셨습니다.그때 가지인 제자들이 받는 은총이 포도나무에서 가지로 흘러들어오는 수액과 같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자들은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해 말라버리고 불에 던져집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실 때 제자들이 느낀 감정이 바로 열매입니다.그런 열매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발을 씻어주시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성령의 열매라고..

2025년 다해 5월 20일 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2025년 다해 5월 20일 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복음: 요한 14,27-31ㄱ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평화!> 우리네 인생이란 것, 돌아보니 혼란과 불안, 부침과 우여곡절의 연속이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꿈꾸는가 봅니다.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정말이지 평화로운 상황을 꿈꿔봅니다. 완만한 흐름의 맑은 강가, 멀리 강 건너편에는 미루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남향 시골집, 철 따라 피고 지며 꽃 잔치를 벌이는 형형색색의 꽃나무들, 비옥한 텃밭, 거기에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나만 생각해 주는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수시로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입니다. 장마철에 집중호우라도 한번 내리면 맑고 잔잔한 강물..

2025년 5월 20일 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2025년 다해 5월 20일 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 복음: 요한 14,27-31ㄱ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성체성사를 남겨 놓으셨는가?> 오늘 예수님께서는 ‘평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선 평화와 반대되는 상태는 이것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낼 필요도 없는 평화를 남기고 가십니다.불안과 두려움은 결국 자녀들을 집착과 자기뿐인 존재, 곧 모기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이에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라고 말씀하십니다.예수님께서 주시려는 평화는 ‘아버지’가 나오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2025년 다해 5월 19일 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교육 주간)

2025년 다해 5월 19일 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교육 주간) 복음: 요한 14,21-26 저는 그저 주님의 종이요 도구일 뿐입니다!> 사도행전은 확연히 변화된 사도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가 심한 박해를 받는 중에도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며 거침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박해를 피해 리스트라라는 지방으로 피해 갔을 때, 거기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 털 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 일어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침 설교 도중 그의 존재가 바오로 사도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말씀에 몰입해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새 삶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오로..

2025년 5월 19일 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교육 주간)

2025년 다해 5월 19일 월요일 † [백] 부활 제5주간(교육 주간) 복음: 요한 14,21-26 성령께서 오시면 깨닫게 되는 진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그리고 그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하십니다.반면 세상에는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여기에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십니다. 성령께서 당신이 선택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계명을 지키면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일까요? 우선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자녀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2025년 다해 5월 18일 일요일 † [백] 부활 제5주일

2025년 다해 5월 18일 일요일 † [백] 부활 제5주일 복음: 요한 13,31-33ㄱ.34-35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잡목과 칡넝쿨,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반송 한 그루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이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가련한 아이 같았습니다. 잘 드는 톱으로 잡목을 잘라내고, 굵은 칡넝쿨과 가시덤불을 과감히 쳐주었습니다. 이미 오래전 말라죽어버린 가지들도 깨끗이 잘라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본래 지니고 있었던 어여쁜 자태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그루를 끝내고 다른 나무로 옮겨가려는데, 말끔하게 단장한 그 나무가 제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게 와줘서 고맙습니다. 관심 가져줘서 고맙습니다. 죽어가던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

2025년 5월 18일 일요일 † [백] 부활 제5주일

2025년 다해 5월 18일 일요일 † [백] 부활 제5주일 복음: 요한 13,31-33ㄱ.34-35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아직 완전한 자녀가 된 게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이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부터 있었던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자기보다 더 어린 여동생에게 인간 다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해 봅시다.그들의 주민등록등본을 떼보지 않아도 둘은 남매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둘이 그토록 사랑한다면 남매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서로 형제처럼 사랑하면 우리가 공통으로 ‘아버지’라 부..

2025년 다해 5월 17일 토요일 † [백] 부활 제4주간

2025년 다해 5월 17일 토요일 † [백] 부활 제4주간 복음: 요한 14,7-14 우리 신앙 여정은 부단한 깨달음의 길입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직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필립보 사도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꽤 긴 시간 그분과 동고동락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필립보 사도는 그분의 신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간절한 마음입니다. 진리를 볼 수 있는 맑은 눈이 필요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부단한 자기 수련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 여정은 부단한 깨달음의 길입니다. ..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 [백] 부활 제4주간

2025년 다해 5월 17일 토요일 † [백] 부활 제4주간 제1독서: 사도행전 13,44-52 복음: 요한 14,7-14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청합니다. 만약 ‘카시아의 성체 기적’, 혹은 ‘성모 마리아의 성자를 잉태하심’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한다면, 그런 질문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카시아의 성체 기적에서는 성체가 피로 변해서 종이에 스며들었습니다.그러니까 종이를 보면 성체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성자를 잉태하신 성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성모님을 보는 것이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