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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6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6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5,38-42 피해 망상적 신앙인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약과 신약의 율법의 차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구약은 세상의 법입니다. 세상 법은 최대한 피해 입힌 대로 보상해 주라는 정의를 법으로 만들었습니다.상대의 잘못으로 눈이 한쪽 잘못되었는데, 두 쪽을 잘못되게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눈이 한쪽 잘못돼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심판관이 당신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장하..

2025년 다해 6월 15일 일요일 †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5년 다해 6월 15일 일요일 †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 요한 16,12-15 우리에게 당신의 내밀(內密)하며 지고(地高)한 신비를 열어 보이신 하느님!> 로마서를 통한 바오로 사도의 신앙 고백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 3-5) 환난도 자랑으로 여긴 바오로 사도의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내면 안에 성삼위께서 항상, 굳건히 현존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각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삼위가 하나 되어 우리에게 ..

2025년 다해 6월 14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2025년 다해 6월 14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복음: 마태오 5,33-37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런 말씀의 배경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유다 지도층 인사들의 신앙 행위는 다분히 문제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의 불일치, 그들이 열렬히 바쳤던 기도와 구체적인 현실과의 유리, 철저한 위선과 교만, 그리고 죄책감 하나 없이 되풀이하던 거짓 맹세가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는 지키지 못할 맹세 아예 하지 말고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맹..

2025년 다해 6월 13일 금요일 †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2025년 다해 6월 13일 금요일 †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오 5,27-32 거센 유혹 앞에서> 지난주에 저희 피정 센터에 한국에 진출해있는 여러 수녀회 젊은 수녀님들이 기도 세미나를 하러 오셨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젊은 수녀님들을 보니 그래도 아직 우리 교회에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각 수녀회에서 막내로 사느라 고생이 많은 기색이라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4박 5일 동안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주방 내려가서 수녀님들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올라와서 미사를 봉헌하고, 마침 성가 끝나기도 전에 초스피드로 내려와 빵도 굽고, 수녀님들 좋아하는 라면도 끓였습니다. 9시 반에 또 올라와서 강의를 하고, ..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2025년 다해 6월 13일 금요일 † [백]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오 5,27-32 욕구가 커지면 삶의 의욕이 줄어든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톨릭 콘텐츠 등에서 성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너무 누를 필요가 없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심지어 성욕도 하나의 좋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면 오히려 많은 성과를 내게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성욕이 좋은 에너지이면 좋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 성욕을 계속 증가시켜야 할까요?이런 모든 것들은 잘못된 세속적 학문에서 비롯된 생각들입니다. 오늘 복..

2025년 다해 6월 12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2025년 다해 6월 12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복음: 마태오 5,20ㄴ-26 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미쳐 있습니까?> 교회 역사 안에서 물건이나 외모,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기로 가장 유명한 분이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님입니다. 그분의 사제관은 아무것도 없이 너무 황량해서 마치 유령의 집과도 같았답니다. 신부님은 단 한 벌 밖에 없는 수단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습니다. 워낙 전반적으로 너덜거렸기에 수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두는 한 번도 약칠을 하거나 솔을 댄 적이 없이 그냥 되는대로 신었습니다. 보기 흉한 모자, 시골스런 외모... 누가 보아도 노숙인으로 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비안네 신부님을 두고 동료 사제들이 화가 나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비안네 신부는 우..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2025년 다해 6월 12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복음: 마태오 5,20ㄴ-26 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은 표출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진다고 하셨습니다.이는 ‘살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 2페니(약 20원)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일도 있었습니다.남편이 출근해서 바로 차를 한 잔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값이 2페니였던 것입니다.그런데 어느 날 주머니에 있던 2페니가 사라진 것입니다.아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내는 자신을 도둑으로 모느냐며 크게 화를 냈습니다.이에 남편도 화를 냈고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고 심지어 상대의 집안을 들먹이며 싸움은 더 크게 번졌습니다. 결국, 남편..

2025년 다해 6월 11일 수요일 †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25년 다해 6월 11일 수요일 †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복음: 마태오 10,7-13 숱한 난관과 시련 가운데서도 바르나바 사도의 태도는 일관되게 긍정적이었고 낙관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이어갈 직제자들인 사도들을 선택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독특합니다.우리 인간들의 선택 기준과는 사뭇 다릅니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우리는 즉시 머릿속에 답이 있습니다.스펙이 좋은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 배경이 좋은 사람, 친화력 갑인 사람...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 기준은 달랐습니다. 당시로는 무장독립투사였던 열혈 당원을 제자단에 가입시켰는가 하면 친일파이자 배신자, 매국노인 세리도 사도로 뽑으셨습니다.진중하고 헌신적인 사람을 사도로 뽑으셨는가 하면, 좌충우돌에 모난 돌 같은 사람도 사..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2025년 다해 6월 11일 수요일 †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복음: 마태오 10,7-13 평화로 평화를 얻는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지혜로운 노신사가 정년퇴직을 한 뒤 고등학교 근처에 작은 집을 구입했습니다.처음 이삼 주 동안 그는 평화와 만족감 속에서 은퇴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오후, 세 명의 학생이 방과 후에 젊음의 에너지로 가득 차서 거리로 내려왔습니다.그들은 길가에 세워 둔 휴지통들을 신나게 걷어차기 시작했습니다.날마다 그 와장창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마침내 노신사는 뭔가 조치를 취할 때가 됐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튿날 오후. 노신사는 거리로 나가 여전히 쓰레기통을 빵빵 차며 걸어오..

2025년 다해 6월 10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2025년 다해 6월 10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복음: 마태오 5,13-16 세파에 지친 나그네를 따뜻이 환대하는 우리 교회!> 각종 진귀한 예술품과 문화유산을 간직한 고색창연한 유럽의 대성당들을 방문하며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많은 성당들은 그저 수많은 관광객들이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이지, 주님의 은혜로운 복음이 우렁차게 선포되는 장소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주일 대미사가 거행되는데, 미사 참례자 수는 손을 꼽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조만간 우리 한국 교회에 닥쳐올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유럽 교회는 성당 여기저기 설치된 성화며 값진 예술품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우리 성당들은 그럴 상황도 아니니, 참으로 암담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