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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해 6월 19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9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6,7-15 세상이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 교회가 침묵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의 뒤를 잇는 대 예언자가 있었으니 엘리야 예언자였습니다. 살아생전 엘리야가 보여준 놀라운 예언의 능력과 통찰력, 지도층 인사들의 부패와 타락, 우상숭배 앞에서 보인 단호한 태도 앞에 백성들은 큰 갈채를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시자 세상 사람들은 엘리야 예언자가 환생했다고 믿기까지 하였습니다.그 정도로 그는 당대 백성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었는데, 비결은 그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느님만이 전부였습..

2025년 6월 19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9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6,7-15 골방의 문, 주님의 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기도는 골방에서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서 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이 말씀을 이어보면 주님의 기도가 마치 골방이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려줍니다. 이 지상은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이 우리 힘을 빨아먹는 곳입니다. 이 욕구가 사라져야 하느님의 음성으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이 욕구가 사라지려면 세속-육신-마귀가 쓸모 없어지는 환경에 나를 가둬야 합니다.그곳이 골방입니다. 예수님으로 말하자면 광야이고 저로 말하면 성체조배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더는 추구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

2025년 다해 6월 18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8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6,1-6.16-18 부단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과의 결별!> 유다 사회 안에서 가장 위선적인 사람들로 손꼽히는 부류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이 배운 사람들, 고위층 인사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사제들! 같은 사제로서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사제들의 삶이란 것, 쉽게 위선자로, 이중인격자로 전락하기 쉬운 삶인 듯합니다. 항상 강론대에 서야 하고, 뭔가 좋은 말을 해야 하는데, 구체적인 삶을 따라가지 못하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들도 처음에는 하느님 말씀의 성실한 전달자들이었으며 충실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성전 가까이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8일 수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6,1-6.16-18 하늘로 향하는 이들이 반드시 가진 자기만의 골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기도-단식할 때 타인에게 잘 보이려 하기보다는 하느님께 잘 보이려는 목적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자선-단식-기도는 세속-육신-마귀를 이기기 위한 수단입니다.돈과 맛과 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한 무기입니다. 세상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입니다.하늘로 향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소유욕과 식욕, 교만과 반대되는 욕구입니다.그러니 자선-기도-단식을 통해 세상 것을 버리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상을 지향하지 않는 방식은 타인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라 하십니다.그러니 하느님을 향하는 방식은 타인의 ..

2025년 다해 6월 17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7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5,43-48 원수 사랑, 가능하던가요?> 한 아이가 저희 집에 왔었는데,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정말이지 웬수가 따로 없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부모님과 온 가족이 매일 울고 지냈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랬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 아직 제대로 가공이 안 돼서 그런가 봅니다. 이런 애들이 대체로 대기만성형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 잘 견디시면, 이 아이 정말 크게 될 것입니다. 이 아이는 머지않아 가문의 대들보가 될 것입니다.” 나름 위로를 드린다고 그런 희망의 말씀을 드리지만, 별 도움 안 되는 제 말에 그냥 웃어넘기는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한번 휘몰아치면 사람 바뀌는 것 순..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7일 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5,43-48 용서의 방법과 순서> 찬미 예수님!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심장이지만,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도전입니다.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마주할 때 솟구치는 감정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오늘 강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용서에도 방법과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곧 세상 정의만큼은 올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작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 하느님의..

2025년 다해 6월 16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6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5,38-42 아무런 걱정 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코린토 후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을 묵상해 봤습니다. 제 마음을 흔들고 일깨우는 짧은 문장이나 단어들을 쭉 나열하며 음미해 보니 하나하나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 날, 많이 견디어 냄,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수고와 밤샘과 단식,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다 보니, 복음 선포를 위한 바오로 사도의 행복했지만, 고통과..

2025년 6월 16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2025년 다해 6월 16일 월요일 † [녹] 연중 제11주간 복음: 마태오 5,38-42 피해 망상적 신앙인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약과 신약의 율법의 차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구약은 세상의 법입니다. 세상 법은 최대한 피해 입힌 대로 보상해 주라는 정의를 법으로 만들었습니다.상대의 잘못으로 눈이 한쪽 잘못되었는데, 두 쪽을 잘못되게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눈이 한쪽 잘못돼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심판관이 당신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장하..

2025년 다해 6월 15일 일요일 †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2025년 다해 6월 15일 일요일 †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 요한 16,12-15 우리에게 당신의 내밀(內密)하며 지고(地高)한 신비를 열어 보이신 하느님!> 로마서를 통한 바오로 사도의 신앙 고백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 3-5) 환난도 자랑으로 여긴 바오로 사도의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내면 안에 성삼위께서 항상, 굳건히 현존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각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삼위가 하나 되어 우리에게 ..

2025년 다해 6월 14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2025년 다해 6월 14일 토요일 † [녹] 연중 제10주간 복음: 마태오 5,33-37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런 말씀의 배경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유다 지도층 인사들의 신앙 행위는 다분히 문제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의 불일치, 그들이 열렬히 바쳤던 기도와 구체적인 현실과의 유리, 철저한 위선과 교만, 그리고 죄책감 하나 없이 되풀이하던 거짓 맹세가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는 지키지 못할 맹세 아예 하지 말고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