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36

2025년 2월 21일 금요일 † [녹] 연중 제6주간

2025년 다해 2월 21일 금요일 † [녹] 연중 제6주간  복음: 마르코 8,34-9.1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는 것이 싫어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며 살았습니다.그래서 대체적으로는 인간관계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내가 아무리 잘 해 주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내가 이렇게 잘 해 주는데 왜 나를 싫어하지?’그렇게 생각하며 성경 말씀대로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나의 사랑이 부족한 것 같아서 모든 에너지의 98%를 그 사람을 위해 썼습니다.그러나 그 사람은 결국 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이런 것..

2025년 다해 2월 1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5주간

2025년 다해 2월 15일 토요일 † [녹] 연중 제5주간  복음: 마르코 8,1-10 라면 다섯 개에 파 송송, 계란 탁!> 언젠가 각종 자재를 잔뜩 실은 대형 트럭이 저희 피정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울퉁불퉁, 꼬불꼬불한 시골길에, 심한 정체로 기사님과 도우미께서 엄청 고생한 분위기였습니다. 힘을 합쳐 짐을 내리고 나서 두 분 얼굴을 보니 빨리 내려오느라 끼니도 못 챙긴 분위기였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즉시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마르 8,3) 그래서 제가 정중히 두 분에게 여쭈었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제가 초스피드로 라면을 끓여드릴 수 있는데,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두 분은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습니다. ..

2025년 다해 1월 27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주간

2025년 다해 1월 27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주간  복음: 마르코 3,22-30 의인들의 존재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을 드러내는 명확한 표지입니다!>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평소 늘 점잖고 예의 바르던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불리던 사람들 입에서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욕이 튀어나와 깜짝 놀란답니다. 하도 어이없는 일,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 그야말로 웃픈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니 벌어지는 에피소드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생활 리듬이 깨진 관계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열이 받쳐 새벽 두시 세시까지 잠이 안 오니, 자연스레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하고, 겨우 겨우 아침에 일어나고를 반복한답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2025년 1월 7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2025년 다해 1월 7일 †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복음: 마르코 6,34-44 왜 신부님, 수녀님이 되면 저절로 믿게 될까?> 하느님이 계심이 의심이 들어 고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중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믿음으로 내어놓을 때, 그것을 넘치도록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통해 수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정배연 수녀님의 이야기 또한 이러한 진리를 잘 보여줍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머니를 돌볼 수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할 수도 없었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제는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카테고리 없음 2025.01.07

2024년 다해 12월 31일 화요일 + [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2024년 다해 12월 31일 화요일 + [백]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복음: 요한 1,1-18 충만하신 하느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옹색한 존재인지요?> 우리 모두 또다시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니 즉시 떠오르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이 정도 선에서 올해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설상가상이라고 제주 항공 여객기 참사가 우리 모두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했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탄식이 절로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순식간에 수많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초대형 참사를 바라보며 너무나 안타깝고 안쓰러워할 말을 잊습니다. 그 많은 꿈과 희망, 애틋한 사연들, 못다 한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이번 참사로 세상을 떠난..

2024년 12월 27일 금요일 †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2024년 다해 12월 27일 금요일 †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요한 20,2-8 사람은 자기가 믿는 하느님처럼 이웃을 만난다.> 어제 외국에 있는 큰형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은 오랜 냉담 끝에 성당에 다시 나가기로 했는데 고해 때 그 사제가 또 냉담할 걸 뭐 하러 고해하러 왔느냐고 했다고 합니다.그리고 어르신들에게 하는 행동도 마치 깡패 같았다고 합니다.그래서 자신이 더 죄짓지 않기 위해 다시 냉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물론 지금은 본당신부가 바뀌어서 귀국하면 다시 나가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자비이시고 사랑인데, 왜 어떤 신앙인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까요? 한 마디로 실제로는 하느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오늘은 사도 성 요한의 축일..

2024년 다해 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 [자] 대림 제4주간

2024년 다해 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 [자] 대림 제4주간  복음: 루카 2,1-14 우리 안에서 친구처럼 허물없고 연인처럼 섬세한 하느님이 태어나시기를!>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엄청난 고통과 상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니 서민들의 삶도 크게 출렁입니다. 오랜 세월 쌓아 올려온 국가 이미지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지 기약도 없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기 예수님의 성탄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난감하고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성탄의 의미는 오늘 이 시대에 맞춰 계속 재해석되어야 하고 성찰되어야 합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은혜로운 대 사건입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하..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 [자] 대림 제4주간

2024년 다해 12월 23일 월요일 † [자] 대림 제4주일  복음: 루카 1,57-66 ‘이것’ 아닌 은총의 다른 통로는 없다.> 어느 날 파우스티나 성녀는 어떤 영혼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그녀는 즉시 주님께 9일 기도를 바치기로 결심하고, 미사 시간에 양쪽 다리에 고행용 쇠사슬을 착용하고 기도와 함께 고행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고해성사 때가 되어 영적 지도자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보러 갔습니다.영적 지도자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고행을 말하려고 했고 영적 지도자도 그것을 당연히 허락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 신부님은 허락도 없이 그런 고행을 하는 것에 매우 놀라고 건강 때문이라도 그런 고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

카테고리 없음 2024.12.23

2024년 다해 12월 15일 일요일 † [자]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2024년 다해 12월 15일 일요일 † [자]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복음: 루카 3,10-18 구세주의 찬란한 별빛을 뵙고자 한다면...> 다들 요즘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십니까?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니 서민 경제도 바닥이고,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자영업자들, 서민들 다들 힘들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은 임마누엘 하느님, 언제 어디서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만사형통할 때도 함께 하시지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도,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갈 때도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토록 어려운 국면에 처한 우리 현실 안에도 주님께서는 반드시 함께 하시며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끌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꼭 그렇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하는 대림시기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며..

2024년 다해 12월 13일 금요일 †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2024년 다해 12월 13일 금요일 †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마태오 11,16-19 거룩하고 흠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신명 나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를 적극적으로 환대하고 공감해 주고, 호응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정말이지 사람 살맛 나게 하고 기를 한껏 살려줍니다. 어딘가 강의를 갔는데, 다들 소 닭 보듯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는 분위기, 마치 민방위 교육장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강사로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이 땅에 육화강생하신 예수님께서도 그런 냉랭한 대우를 참 많이 받으셨습니다. 특히 당대 나름 잘 나간다고 자부하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