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5월 14일 수요일 †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복음: 요한 15,9-17
<주님의 섭리에 온전히 맡긴다는 표시로서의 제비뽑기!>
오늘 베드로 사도는 120명이나 되는 형제들 앞에 서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담대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일장 훈시를 하고 있습니다. 훈시의 요지는 배반자 유다 사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
훈시를 마치며 베드로 사도는 떠나간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출하자고 제안하는데, 그 과정에서 베드로 사도의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 같았으면 핵심 사도단인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모여 긴급회의를 거쳐 검증된 인물 한 명을 천거해서 동의를 얻었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제안한 방식은 이른바 ‘제비뽑기’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제비뽑기라니, 날아다니는 제비를 한 마리 잡아, 그 제비를 이용해서 뭔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제비가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추첨을 통해 새로운 사도를 한 명 뽑는 것이었습니다.
제비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제비뽑기는 ‘종이에 글을 적은 뒤 접어놓고 섞어서 뽑다.’는 말입니다. ‘접다’는 말의 옛말이 ‘졥다’인데, ‘졥다’에 접미사 ‘이’를 붙여 ‘졔비’가 되었고, 구개음화 법칙에 따라 제비가 된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후보는 묘하게도 요즘처럼 두 사람이었습니다. 1.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을 지닌 요셉. 2. 마티아.
사도행전은 두 사도에 대한 세세한 인물 소개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기호 1번인 요셉이 기호 2번 마티아 보다 더 유력한 인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먼저 거명되고 있으며, 동시에 바르사빠스라고도 불렸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이 인지도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호 2번 마티아는 그 어떤 소개 말씀도 없이 딸랑 이름 석 자만 소개되고 있는 걸 봐서 인지도가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사도들이나 함께 모여 기도했던 사람들도 요셉이 당선될 가능성을 크게 봤을 것입니다.
이윽고 사도들은 두 사람, 요셉과 마티아를 사람들 앞에 세우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주십시오.”(사도행전 1장 24~25절)
그러고 나서 두 사람에게 제비를 뽑게 하였는데, 결과는 요셉이 아니라 마티아가 사도로 선택되었습니다.
이처럼 중대한 결정을 ‘제비뽑기’로 진행하는 것이 좀 웃기기도 하지만, 당시 유다 전통 안에서 제비뽑기는 주님의 뜻을 찾는 한 방편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 나머지는 주님의 섭리에 맡긴다는 표시가 제비뽑기였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티아는 사도로 선출된 즉시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합니다. 여러 이교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후에 멀고도 먼 땅,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선교에 전념하다가 영광스러운 순교의 월계관을 쓰셨다고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