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3월 4일 화요일 † [녹] 연중 제8주간 복음: 마르코 10,28-31
<아마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순례 여정이지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 수도자이지만, 오늘 복음 묵상할 때마다 부끄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수시로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되풀이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 비록 그 장엄한 고백이 며칠 가지 않는 선언이라 할지라도, 그의 순수한 마음과 타오르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언약과 서원을 당신께 드리지만, 인간적 나약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우리의 그 열정과 순수성을 크게 평가하시고, 우리의 결핍과 헛된 맹세조차 기쁘게 받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묵상하며 제 개인적으로 참 부끄러웠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우리들이기에 나중에 지키지는 못할망정, 일단 그리도 열렬히 그리고 용기 있게 선언하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이 부럽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저도 목청 높여 외치기는 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는 세례 때에 저를 당신께 봉헌하도록 하셨으니, 당신을 보다 가까이 따르도록 저를 부르시는 당신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빛과 힘이신 성령의 인도 아래, 저는 온전한 자유로 당신께 저를 바치나이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주님 외에 모든 것을 버리겠노라고, 그리고 남아있는 삶과 젊음과 에너지 모두를 그분께 남김없이 바치겠노라고 금강석보다 더 단단한 각오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버리고 바치기는커녕 끝도 없이 쌓아 올리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교만과 허영의 탑이 이미 높이 쌓아 올려졌습니다. 쓸모없는 가지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그렇게 피곤한 인생을 허덕이며 살아왔습니다.
근사한 새집을 짓기 위해서는 낡고 오래된 집은 허물어야 마땅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 성전을 건설하기 위해 높이높이 쌓아 올린 거짓과 위선의 탑을 과감하게 허물어버려야겠습니다. 참 주님의 제자로 거듭나기 위해 아쉽지만 또다시 버리고 또 버려야겠습니다.
거짓말처럼 또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성령의 봄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합니다. 성령의 바람을 타기 위해서 몸집을 줄여야겠습니다. 홀씨처럼 가벼워져야겠습니다. 그래야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홀연히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렸다고 하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좀 더 버려야겠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품에 온전히 안기기 위해 좀 더 과감히 버려야겠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도 버리고,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교만함도 버려야겠습니다. 오랜 세월 쓰고 있던 위선과 거짓의 가면도 벗어 버려야겠습니다.
부단히 버리고 버림을 반복하던 어느 날 가벼워진 우리는 그토록 고대해왔던 강렬한 주님 현존을 체험할 것입니다. 버리고 또 버린 우리,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주님 당신 밖에 없게 된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활짝 미소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 29-30)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