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공유/Faith

2025년 다해 3월 2일 일요일 † [녹] 연중 제8주일

tiragon 2025. 3. 2. 09:27

2025년 다해 32일 일요일 [] 연중 제8주일  복음: 루카 6,39-45

 

<사실 내 흠결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한데...>

 

젊은 수도자들의 수련장 역할을 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수련장은 수도회의 미래를 책임질 후배 수도자들의 전반적인 양성을 책임져야 하니 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수련장은 이태리어로 Maestro, 영어로는 Master, 그러니 말마디 그대로 스승이요, 바꿔 말하면 수도자들을 만드는 장인(匠人)입니다.

 

주로 주어지는 일은 미우나 고우나 늘 수련자들 곁에 붙어있으면서 제발 인간 되라고 잔소리하는 일입니다. 목표치를 설정해 주고 밀어붙이면서 자극도 줘야 합니다. 그러나 마냥 그래서는 어린 수사님들이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때로 상담가가 되어 위로도 해줘야 하고 격려도 해줘야 하고 박수도 쳐 줘야 합니다. 당근과 채찍을 바꿔가며 사용하면서 수도자로서의 틀을 만들어주는 3D 업종 종사자가 수련장입니다.

 

정기적으로 수련자들을 집합시켜놓고 불러 모아놓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도 많이 했습니다. “수도자 될 사람이 이래도 되냐? 저래도 되냐? 기도 시간 적어도 10분 전에는 딱 나타나 있어야 된다. 묵상 시간에 졸면 어떡하냐? 나중에 사목자요 공인이 될 사람이 밥 먹을 때 그렇게 소리를 내냐?”

 

그래놓고 나중에는 제가 자충수에 빠지곤 했습니다. 어떤 때 수련자들은 다들 기도 시간에 일찌감치 나와 있는데 제가 제일 늦기도 했습니다. 다들 진지하게 묵상에 전념하고 있는데 저만 묵상 시간에 쿨쿨 잘 때도 많았습니다.

 

예리한 수련자들은 그런 순간을 또 놓치지 않습니다. 딱 기억해놓았다가 자기들끼리 두고두고 수군거립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아보니 제일 미안했던 부분입니다.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형제들에게 강하게 요구한 것입니다. 사실 내 흠결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형제들의 작은 흠결에 연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름 스승이라고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던 사람들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가 봅니다. 특별히 속에 든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잔뜩 폼만 있는 대로 잡고 다니던 스승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스승들을 향해 날리는 예수님의 직격탄은 속이 다 시원할 정도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들보라는 표현을 통해 꽤 센 과장법을 사용하십니다.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른 나무(crossbeam)를 의미합니다. 꽤 무겁고 큰 나무토막이겠지요. 아무리 우리 눈이 왕방울만큼 크다 하여도 길이가 몇 미터나 되는 들보가 우리 눈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들보입니다. 몇 미터뿐만 아니라 수십 미터나 되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허물들, 결점들, 잘못들, 죄악들, 오류들, 언행의 불일치, 그릇된 지향, 하늘을 찌르는 위선, 극도의 이기심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이웃을 현미경으로 바라보기에 앞서 내 발밑을 먼저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나란 모순 덩어리의 존재를 알아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상대방 입장에 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겸손한 태도로 이웃들의 의견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참 인간이요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반성하고 진단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과오와 부족함에 대해 스스로 질책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도 권리도 없습니다.

 

이웃을 저울질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현실과 상황을 세밀히 살펴보아야 마땅합니다. 특히 날카로운 비판 전문가들은 이웃을 비판하기에 앞서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