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1일 토요일 † [녹] 연중 제3주간 복음: 마태오 12, 46-50
<때로 아니 계시는 듯하지만, 반드시 우리 신앙 여정을 굳건히 동반하시는 주님!>
성향이 다른 여러 형제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다 보니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성격이 세상 느긋한 형제가 있는가 하면, 스팀 보일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급한 형제도 있습니다.
가끔 수도원 건물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할 때가 있습니다. 크게 알람이 울립니다. 그 순간이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초스피드로 튀어나와 상황을 체크하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절대 문밖 한번 내다보지 않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작은 거룻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배의 앞부분을 이물 혹은 선수(船首)이라고 하고, 뒷부분은 고물 혹은 선미(船尾)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다들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배의 뒤쪽에 누우셔서, 배게까지 베고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기상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다 보니, 베드로나 요한을 비롯한 성격 급한 몇몇 사도들이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천하태평이신 예수님을 보며 해도 해도 너무하다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제자들이 보여준 태도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삼라만상의 주인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있는데도 제자들은 목숨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미성숙과 불신앙, 몰이해와 두려움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느릿느릿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호수를 향해 외치십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
예수님께서 보이신 기적을 목격한 제자들은, 조금 전 집채만 한 풍랑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제자들, 당신을 향한 믿음도 부족하고, 이해의 폭도 넓지 않은 제자들을 향해 크게 나무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폭풍을 잠잠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이 그분 안에 현존하고 계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 옛날 제자들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겪었던 체험을 고스란히 겪게 됩니다. 이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여정 안에 높은 풍랑과 파도를 수시로 겪게 됩니다.
폭풍우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흔들리는 우리 배 안 어딘가에 주님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로 아니 계시는 듯하지만, 반드시 우리들의 여정에 함께 동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고통이나 시련 여부에 상관없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늘 존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와 이해하지 못할 현실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