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14일 금요일 †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복음: 마르코 7,31-37
<내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정말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를 데려온 사람들에 대해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단지 “나을 것이다.”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고, 침을 찍어 그의 혀에 대시며, “에파타!” 곧 “열려라!”라고 분명히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그 대상에게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더욱 신경 써 주고 계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보스코의 말처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도 몸소 실천하신 사랑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에파타라고 말씀하시면서, 행동과 언어를 결합하여 상대가 체험할 수 있는 사랑을 선사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저 “손을 얹어 주십사” 청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사랑을 느끼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더는 내가 저 사람에게 필요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헤어질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그럼 헤어져야 할까요?
영화 ‘아이 엠 샘(I Am Sam)’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샘이 어린 딸 루시를 키우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샘은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단순한 삶을 영위하는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루시가 태어난 직후에 여자는 떠나버립니다. 샘은 자신의 인지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루시를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키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아이에게 제공합니다.
그런데 루시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버지를 지적으로 능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7세가 되자 그녀는 아버지가 다른 성인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서만은 일부러 글을 읽지 못하는 척합니다.
샘은 딸과 함께 간 식당에서 어린이처럼 없는 메뉴를 주문하며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는 딸의 입장은 매우 난처합니다. 이런 일이 이어지자 사회 복지 서비스는 샘이 루시를 키울 수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재판이 열리고 샘은 결국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에게 더는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같이 살고 싶어 하지만, 샘은 루시를 위해 그녀를 좋은 집안으로 입양 보냅니다.
딸은 새로운 집에서 잘 적응해갑니다. 샘은 딸을 만나러 갔다가 자신 없이도 잘 지내는 것을 보고는 그냥 돌아옵니다. 그러나 루시는 아빠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그러한 집에서 자라게 해 준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아빠와 딸을 키우는 집의 엄마는 마치 공동육아처럼 서로 협력하여 루시를 키우기 시작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에서 샘이 딸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딸을 잘 키워줄 누군가에게 딸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가장 잘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 감사 받는 일입니다.
한국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 역시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던 엄마는 동물원에서 아이의 손을 일부러 놓아 아이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기억은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자기 힘만으로 키우려 합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아이가 마라톤을 하려고 하자,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없는 아이가 마라톤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엄마와 아이가 화해하는 때는 엄마가 아이에게 마라톤 코치를 소개해 주면서부터입니다.
초원이는 달리는 법을 배우고 행복하게 달립니다.
그리고 자신을 코치에게 보내준 엄마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만이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에게 자신을 데려온 그 사람이 치유를 받고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힘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지 맙시다. 한계에 부딪힙니다.
주님께 데려가는 사람은 당장은 그 사람을 잃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영원히 그 사람에게 감사 받고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