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다해 12월 4일 수요일 † [자] 대림 제1주간 복음: 마태오 15,29-37
<선악과는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에 사용된다.>
오늘 봉헌에서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에서 당신을 따르던 이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배고프게 돌려보내서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먹이려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의 빵이 없었으면 기적을 하시지 않으셨을까요?
그분은 마치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처럼 그럴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도 무언가 요구하시는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중국 소설 『나는 남편을 파산시키려고 매일 열심히 일한다』는 자기 삶이 미리 정해졌다고 믿는 여성 린멍(Lin Meng)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부유하고 헌신적인 남자인 그녀의 남편은 더 큰 성공을 거둔 후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재혼하게 될 운명입니다.
린멍이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린멍은 그래서 남편의 사업을 망하게 하려고 결심합니다.
그녀는 남편의 돈으로 실패한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값비싼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남편의 자원을 고갈시킬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녀의 행동에 저항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그녀의 새로운 노력과 꿈을 지원합니다. 남편을 파산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성공이 뒤따릅니다. 그녀가 자금을 조달한 영화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대 히트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쇼를 위해 고용한 값비싼 유명인은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그녀의 가장 무모한 사업 결정조차도 예상치 못한 이익을 가져옵니다.
그녀의 노력은 파멸을 초래하기는커녕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라 남편의 그늘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남편도 아내인 린멍을 더 존경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더욱 신뢰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를 단순히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라 엄청난 힘과 비전을 지닌 파트너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왜 요구하셨을까요? 단순히 당신에게 받은 것에 감사하기만을 위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본래 그들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습니다.
그 일에 그들이 봉헌한 것이 쓰여 자신들도 하느님의 일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하느님도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도 신학생 때 유학을 다녀오고는 공부가 쉽지 않음을 알고 신부가 되었을 때 다시 유학 가라고 하셨을 때는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느낍니다.
주교님이 저에게 있는 무언가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상호 존중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내가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봉헌하지 않는다면 본당에 나가 본당신부를 하였어도 크게 고마워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저 자신도 그분께 합당한 사제가 아니라고 여겨 적당히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인간의 죄를 위해 모든 보속을 해야 더 완전하겠지만 예수님은 당신 혼자 모든 것을 이루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명확하게 예수님의 보속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수난의 부족한 부분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골로 1,24)
저는 신자들에게 봉헌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그 봉헌된 것으로 신자들에게 다시 돌려줘 그것으로 선교할 자금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소공동체에 돌려줘 가정방문할 때 선물을 사라고 하고 가두 선교할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봉사하는 그분들이 낸 교무금과 헌금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신자들을 존경하게 되고 신자들도 본당 신부의 합당한 신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1849년 세관의 검사관으로 일하던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해고당했습니다.
아내는 오히려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당신이 좋아하는 문학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아마 이 해고가 당신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그리고 아내는 현금 뭉치가 든 작은 가방을 가져와 꺼내 놓으며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혹시나 해서 당신 봉급에서 지금까지 따로 마련해 놓았어요. 당신이 글을 쓸 동안 우리는 이 돈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 남편의 이름은 너새니얼 호손이고 그가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유명한 ‘주홍글씨’입니다.
‘주홍글씨’나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위대한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에 어떤 누구도 호손이 자기 능력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영광은 아내와 함께 받아야 정당할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무엇을 이루어냈을 때 그것이 누구의 공로인지 정확히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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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