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5월 5일 월요일 † [백] 부활 제3주간 복음: 요한 6,22-29
<끝까지 가지 못하는 신앙인의 특징>
어제 저희 성당에서 성인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그 전날 토요일 급박하게 한 남자 예비자와 면담하여 일단 세례를 보류하였습니다. 대부까지 다 정해두었는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한 사제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게 하고, 인간의 죄까지도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제가 양심적으로 세례를 줄 수 없었고, 그분도 조금 더 공부해 보고 다시 세례에 도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으라고 표징다운 표징을 두셨음을 믿지 못할까요?
표징이 없다면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면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면 구원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여러 종교에 대한 나름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비자인데도 최양업 신부님, 황사영, 교황의 무류권 등을 거론하였습니다.
어쩌면 구원을 ‘지식’으로 얻는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영지주의의 냄새가 났습니다. 이런 상태면 분명 중도 포기가 보이기 때문에 보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신앙으로 나아와야 할까요?
2008년, 중국 쓰촨성을 강타한 끔찍한 대지진 속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구조대원들은 폐허 속에서 기이한 자세로 숨진 한 젊은 어머니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듯, 무릎을 꿇고 상체를 깊이 숙인 모습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 아래를 파헤치자, 포대기에 싸인 채 평온하게 잠든 아기가 기적처럼 살아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온몸을 던져 아기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조대원은 아기 옆에서 어머니의 휴대폰을 발견했고, 그 화면에는 아직 전송되지 못한 마지막 문자 메시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만약 네가 살아남는다면 이것만은 꼭 기억해 주렴.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이 임박한 순간,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 속에서 그녀는 왜 이 메시지를 남기려 했을까요? 그녀의 '행동'은 이미 그 자체로 사랑의 가장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그 희생보다 더 큰 사랑의 '표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말'로써, '글자'로써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아기가 먼 훗날이라도 그 사랑을 분명히 '믿게'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속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나며, 때로는 그 사랑을 받는 이가 분명히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표징(Sign)'을 남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몸은 아기를 살린 '희생의 표징'이었고, 휴대폰 메시지는 그 사랑을 영원히 증언하는 '언어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아들이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랑이 상대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마치 바닥에 뿌려지는 포도주처럼 쓸모없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어머니의 정보를 알아가거나, 제사를 드리는 예식을 하는 일이 아닌, ‘어머니가 남긴 표징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믿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성체성사로 이어지고, 성체성사를 통해서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믿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 번이나 배신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런데도 “너 다른 이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사랑은 믿음이 바탕이 됩니다. 다른 이유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다 멈추더라도, 믿음을 증가시키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완전을 넘어서도 아직 갈 길이 많음을 알고 결코 멈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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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