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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7일 월요일 † [녹] 연중 제3주간

tiragon 2025. 1. 27. 00:56

2025년 다해 127일 월요일 [] 연중 제3주간  복음: 마르코 3,22-30

 

<성체를 모독한 자에게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까?>

 

오늘 율법 학자들은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듭니다.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과 악령을 구분할까요?

 

진짜 부모가 주는 것과 가짜가 주는 것의 차이를 알면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평화입니다. 그래야 자녀가 착하게 자라 세상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불안을 준다면 그것은 창조자에게서 오는 영이 아닙니다.

이것이 영을 분별하는 가장 완전한 기준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거나 마귀가 나간 존재들이 느끼는 것은 기쁨과 평화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찬미합니다. 이런 결과를 보고도 율법 학자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조심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성령은 믿음으로 이끄는 하나의 초대와 같습니다.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초대장입니다.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이나,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난 별들은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악령을 쫓아내는 성령도 그러한 표징을 통해 사람들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유산은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성령과 같습니다. 이 초대장을 거부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 초대장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한 아들이 회개는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자비를 믿고 회개를 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기 어렵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양심입니다.

 

우리 안에 양심이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그리고 그 양심은 정의 시스템입니다.

양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게 만드는 게 양심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뜻을 들어주며 음식도 흘리지 않게 먹게 되고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여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다면 어떤 존재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양심 때문에 지옥에도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에 무조건 양심이 발현하여 성장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사람들은 거짓말과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양심을 속이는 일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것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결국 하느님의 초대까지 거부하거나, 심지어 그 초대가 악한 것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양심상 하느님께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초대는 하느님의 피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조롱하였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고 차라리 그분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기보다는 지옥에 가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중요한 갈등 구조는 전과자 장 발장과, 법과 정의를 절대시 하는 경찰관 자베르 사이의 대립에서 비롯됩니다.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자비로 새 삶을 살게 되고, 자베르는 범죄자는 결코 변할 수 없다고 믿으며 장 발장을 악으로 단정합니다.

 

그러나 시가전 중 자베르가 위기에 처하자 장 발장은 복수 대신 이 사람이 악령인지, 혹은 진정한 선인지를 고민하던 그를 살려 주어, 오히려 자비와 용서를 베풉니다.

 

자베르는 이 모순을 견디지 못합니다. “악이라고 믿었던 자가 선행을 한다면, 내가 믿어 온 법과 정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양심의 충돌 속에서 그는 자신이 세운 절대적 틀을 무너뜨릴 자유를 얻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이는 복음서에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마르코 3,29)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악령으로 치부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막아버리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초대를 뒤늦게 후회하면서도, “나는 용서받을 수 없다.”라는 절망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것과도 닮았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용서가 찾아왔음에도 스스로를 옭아매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자베르의 비극이며, 이는 성령을 거부하는 영혼의 파멸을 경고하는 대표적 사례가 됩니다.

 

나라에 대한 불만 때문에 국보 1호 숭례문을 방화한 사람은 다시 잘 살아 보자는 나라의 초대에 응해서 편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한국 국민들이 자신을 용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어서 세상에 다시 나오더라도 자신이 움츠러들어 온전히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여성 인권 주의자는 왜 하느님이 남성이어야 하며 성체를 불로 태우고 성체에 욕설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오늘 복음대로 하면 그녀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떻게 세례를 받고 자신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한 성체를 계속 받아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한 번만 부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계속 당신 피의 용서로 부르십니다.

성령은 내가 너의 부모야!”라고 하는 부모의 피가 섞인 초대장입니다.

부모를 만나는 길은 평화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여러 번의 초대를 계속 거부하는 것도 결국 그 초대가 악하다고 여기는 것이기에 나중에 양심이 하느님의 마지막 초대에 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양심을 우리 안에서 떼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양심상 되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https://youtu.be/0tm8GLp7qjA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