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2월 7일 금요일 † [녹] 연중 제4주간 복음: 마르코 6,14-29
<이토록 참혹한 야만의 시대, 흔들림 없이 진리를 증언하고 있는 의인들!>
안타깝게도 우리네 인류 역사 안에 참혹한 사건들은 거듭 반복됩니다. 폭력적이고 교활한 악인의 등장과 승승장구,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의인들과 선인들의 등장과 무고한 죽음이 그렇습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공평하신 하느님께서 어찌 그리 끔찍한 현실을-의인의 고통과 죽음- 허락하시는지,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저토록 무례하고, 저토록 사악한 악의 무리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작당을 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데, 정의로우신 주님께서는 어찌 이리 여전히 침묵하고 계시는지, 대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러실 수 있냐고 따지고 싶은 요즘입니다.
오늘 복음을 장식하는 세례자 요한 케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평생 주님의 길을 미리 닦는 선구자로서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하느님의 대변자로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구원의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최종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정말이지 이해하지 못할 무고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 묘하게도 한 사악한 여인의 모략과 간계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감추고 싶은 과거의 비리와 악행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공연하게 경고한 세례자 요한에 대해 강한 앙심을 품고 있었던 헤로디아의 증오와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찌 이리도 오늘 우리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지 오싹한 느낌마저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토록 참혹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희망해야 마땅합니다. 지금은 비록 악이 활개를 치고 악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느님의 선은 언젠가 반드시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진리를 증언하다가 박해를 받고 무고하게 고통받고 죽어간 의인들의 생애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은 오랜 인류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부끄럽고, 이토록 비인간적이고, 이토록 참혹한 야만의 시대, 단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지속적으로 진리를 증언하고 계시는 의인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께서 항상 그분들 고난의 여정에 끝까지 동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루빨리 짙은 안개가 활짝 걷혀 세상 만물의 형체가 제 빛깔을 발하듯이, 어서 빨리 진위가 가려져,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날뛰는 무리들이 무대 뒤로 조속히 사라지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