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1월 29일 수요일 † [백] 설 복음: 루카 12,35-40
<찰나 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한 달 전 이미 지난 해와 작별 인사를 하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오늘 설날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새해 벽두를 맞이할 때마다 드는 한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야속하게도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른지, 돌아보니 그야말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빠르게 건너온 세월입니다. 다들 한 분 한 분 먼저 떠나가시니, 이제 곧 내차례겠지, 하는 생각에 인생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설날 때마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꽃같이 좋은 시절 만끽했으니, 미련이나 아쉬움 내려놓고 이제 남은 날들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그런 마음.
그래서 길고 긴 황금연휴지만, 어디 멀리 휴가라도 가고 깊은 생각을 멀리 떨치고 한 송이 어여쁜 꽃 같은 아이들 위해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짜장 소스를 만들고 탕수육을 튀깁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인 야고보 서간은 우리 인간 존재의 실체요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아주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특별히 설날 아침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분들, 제사상 건너편에 앉아계신 분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 나라며 가문, 공동체나 가정 전체를 쥐락펴락, 좌지우지했던 사람들...
그 권세, 그 위세가 백 년, 천 년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30년, 50년 지나가니, 그 모든 분들, 마치도 한 줄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우리네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역시 불과 10년, 30년, 50년 후면 어쩔 수 없이 그분들 뒤를 따라나서겠지요.
생각할수록 참으로 아름다운 명문장입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어찌 보면 야고보 서간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장입니다.
이 세상 일에만 목숨 거는 사람들, 영혼이나 상위 가치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지위나 명예, 권력이나 재산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장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 세상 안에서, 인간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일들은 다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확실하십니다. 세상 모든 확실성은 오직 하느님께만 기인합니다.
뭐 엄청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네 인생 참으로 덧없습니다. ‘한 줄기 연기!’ 참으로 적절하고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 번뿐인 우리네 인생,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전투적으로도 살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팍팍하게 살아서도 안되겠습니다.
찰나 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해만 뜨면 사라지는 새벽안개 같은 우리네 삶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시계로 보면 너무나 짧아 아쉬운, 수학여행 같은 우리네 지상 여정입니다. 최대한 기쁘고 신나게,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흥미진진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 친지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 세상 소풍의 둘도 없는 동반자들입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설 명절은 서로를 향한 더 많은 배려와 지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내 목소리는 좀 많이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경청해야겠습니다. 공동체가 좀 더 살아나기 위해, 내가 좀 더 작아지고 겸손해지며, 좀 더 부드러워지고 온유해져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