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다해 12월 11일 수요일 † [자] 대림 제2주간 복음: 마태오 11,28-30
<자기 마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오즈의 마법사에는 양철 나무꾼이 나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양철 나무꾼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워낙 이성적으로 사는 사람이어서 사랑을 느낄 심장을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심장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집착으로 모든 고통을 주는 게 마음임을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양철 나무꾼이 새로운 심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양철 나무꾼은 본래 닉 초퍼라는 이름의 솜씨 좋은 나무꾼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먼치킨 소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먼치킨들을 지배하던 동쪽의 악한 마녀는 이들의 사랑을 막기 위해 닉의 도끼에 저주를 걸었습니다.
“동쪽 마녀가 내 도끼에 저주를 걸어,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내 몸의 한 부분을 잘라냈습니다.”
도끼는 그의 팔다리를 하나씩 베어내었고, 친절한 양철장이가 이를 대신하여 양철로 그의 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국 그의 몸은 전부 양철로 대체되었지만, 도끼는 그의 가슴마저 베어내고 말았습니다. 이에 양철장이가 그의 가슴을 양철로 대체했지만, 이에 따라 닉은 심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심장이 없이는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소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심장을 잃은 그는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그에게 심장의 부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여전히 나무꾼으로서 일을 계속했지만, 마음속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심장이 없으니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 없는 삶은 텅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날 비를 맞고 녹슬어버린 그는 숲속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방치되었지만,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그를 발견하여 구해주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양철 나무꾼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마법사를 찾아가 심장을 달라고 부탁하겠소. 그래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테니.”라며 여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에메랄드 시로 가는 여정에서 양철 나무꾼은 심장이 없다고 믿으면서도 동료들을 위해 여러 번 희생하며 자신의 따뜻한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강을 건너다 허수아비를 구하기 위해 도끼를 휘두르고, 함정에 빠진 사자를 구출하는 등 친구들을 돕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사랑과 배려가 여전히 그의 안에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소. 하지만 내 가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오.”
마침내 마법사를 만났을 때, 그는 심장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법사는 그에게 심장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서쪽 마녀를 물리치라는 임무를 내렸습니다.
임무를 마친 후, 양철 나무꾼은 마법사에게 돌아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마법사는 양철 나무꾼에게 이미 그에게 심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자신 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위해 보여준 희생과 사랑은 진정한 심장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양철 나무꾼이 더 이상 공허함을 느끼지 않도록 마법사는 그에게 비단으로 감싼 톱밥 심장을 주었습니다. 마법사는 말했습니다.
“이 심장은 당신이 이미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줄 것입니다.”
비단은 부드러움과 연약함을, 톱밥은 단순함과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곧 온유함과 겸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성체’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저의 서품 성구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저는 얼음 같은 마음이 사라지고 따듯한 예수님의 마음을 원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하.사.시.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따듯한 심장은 사랑이 거창한 행위나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선택과 타인을 위한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장을 받은 양철 나무꾼은 깨달음을 얻으며 말했습니다.
“이 심장을 영원히 간직하겠소. 이 심장은 양철이라도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니까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울어줄 때 나는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내일 걱정부터 했습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따듯한 가슴을 원했습니다. 이전의 심장이 미웠습니다.
성체를 통해 내 안에 이미 따듯한 심장이 있다고 믿고 온유하고 겸손하여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예수님의 심장이 있다고 조금씩 믿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블랙스완’은 자신이 유명해지지 못한 발레리나 어머니가 딸에게 자기 꿈을 강요하여 딸의 인생을 나락 가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프리마돈나를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자기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엄마의 기대였습니다.
엄마를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결국 그 일은 자기를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엄마가 우리가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마음입니다. 뱀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미워해야 합니다.
어떻게? ‘착한 뜻’을 가지면 됩니다. 지혜를 가지면 됩니다.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지혜로 사랑하려는 착한 뜻만 가지면 지금 심장을 미워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바랄 수 있게 됩니다.
레베카는 아브라함의 종에게 우물에서 물을 길어주고 그의 낙타들까지 물을 먹였습니다.
이 착한 행동이 결국 이사악과 결혼하여 그의 심장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구약에서 십계명을 먼저 주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사람에게 당신은 당신 심장을 내어주십니다.
그것이 성체입니다. 성체를 영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것이 ‘안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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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