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2025년 다해 6월 26일 목요일 † [녹] 연중 제12주간 복음: 마태오 7,21-29
<매일 강론을 쓰는 것이 힘들면서도 행복인 이유>
찬미 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는 것’에 머무는 신앙과 ‘살아내는 것’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갈림길에서, 우리 자신을 비추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아예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과 “열심히 듣지만, 들은 대로 실행하지 않는 사람” 중, 과연 누가 더 나쁘며, 자신과 공동체에 더 큰 해악을 끼칠까요?
오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 말씀과 함께 우리 삶에 더욱 와닿는 실제적인 예화들을 통해
완성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아예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선택은 분명 비극적이지만, 그 피해의 무게는 놀라울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됩니다.
이는 마치 의사에게 중병을 진단받고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겠소. 그런 치료법은 듣고 싶지 않소.”라며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와 같습니다. 그의 완고함은 결국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을 낳습니다.
그의 가족은 슬퍼하겠지만, 그의 선택이 병원의 다른 환자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의 피해는 안타깝게도 그 자신과 자신에게 한정됩니다.
두 번째 유형은 ‘들으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위험합니다. 그는 공동체 안에 신뢰받는 ‘내부자’로서, 그의 작은 ‘불이행’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능한 외과 의사가 치명적인 감염을 막을 새로운 소독법을 교육받았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는 그 중요성을 ‘듣고’ 알았지만, 자신의 경력을 과신하여 그 절차를 무시합니다. 그 결과, 수술을 받은 환자뿐 아니라 병원 전체에 감염이 퍼져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가 벌어집니다.
제가 알던 한 신부도 유능하다고 여겨지고 본인도 그렇게 믿었던 한 의사가 수술 후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아 돌아가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욱 실제적인 예화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베테랑 시내버스 기사가 있습니다.
그는 수십 년 무사고 경력을 자랑합니다. 그는 정비팀장에게 “최근 타이어 이탈 사고가 잦으니, 매일 아침 출발 전 반드시 렌치로 타이어 볼트를 직접 조이며 확인해야 합니다.
눈으로만 봐서는 절대 안 됩니다.”라는 새로운 안전 수칙을 ‘듣습니다’. 그는 물론 그 중요성을 ‘압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그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이 일을 20년이나 했는데, 척 보면 알아. 괜찮을 거야.’ 그는 가장 중요한 안전 점검을 건너뛴 채,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운행을 시작합니다. 결국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의 바퀴가 빠지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고, 수많은 승객과 다른 운전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칩니다. 대부분 대형 사고는 이렇게 터집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마태 7,21) 경고하시는 대상이 바로 이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미사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고, 심지어 주님의 이름으로 큰일을 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미사를 통해 ‘안전 수칙’을 듣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정의를 실천하여라”,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섬겨라.”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다’는 교만함으로, ‘다음에 하지’라는 게으름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점검을 건너뛰고, 양심의 소리라는 경고등을 무시하고, 기도의 의무라는 타이어 볼트를 조이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실행하지 않음’은 단지 우리 개인의 영혼을 좀먹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를 믿고 ‘신앙’이라는 버스에 함께 올라탄 우리 가족, 우리 자녀, 우리 이웃들을 영적 위험에 빠뜨리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저 신자라는 사람들을 보아라. 말과 삶이 저렇게 다르지 않은가”라며 하느님의 이름 자체를 모독하게 만듭니다(로마 2,24 참조).
사도 야고보의 말씀처럼, “실천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야고 2,17 참조). 모래, 곧 실천 없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와 용서 같은 아는 것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사제가 되라는 뜻을 거부한 사람이 더 위험할까요, 사제로 살면서 사제답게 살지 않는 사람이 더 위험할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더 높은 수준의 영성으로 간다는 말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책임감을 요구합니다.
들으면서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아예 듣지 않으려는 사람보다 더 나쁩니다.
듣지 않는 사람은 실행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읽으며 실천할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실천할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저는 하.사.시.와 성경 묵상을 통해 매일 순종할 말씀을 찾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부족합니다.
자신의 길을 아주 명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특별히 매일 강론을 쓰면서 신자들만이 아닌 제가 실천해야 할 것을 찾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쁨이기에, 저는 힘들지만 죽기까지 강론을 쓸 것 같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순종할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것을 찾기 위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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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