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다해 6월 22일 일요일 †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5년 다해 6월 22일 일요일 †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 마태오 6,24-34
<나누어지지 않는 빵은 참된 빵이 아닙니다!>
초보 수도자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아침 식사는 빵을 위주로 한 식사였습니다. 당시는 어찌 그리 빵이 맛있었는지. 요즘은 식빵 하나에 계란 하나면 식사 끝인데, 그때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도대체 몇 개면 양이 찰까, 한번 실험을 해봤습니다. 다섯 개, 여섯 개, 열 개, 마침내 길고도 긴 식빵 한 줄이 다 사라지더군요.
세상의 빵이 지닌 특징이 있습니다. 늘 부족해 보입니다.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늘 뭔가 양이 차지 않습니다. 한번 배부르게 먹었다고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너 시간 지나면 또 다른 빵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합니다.
결국 세상의 빵은 이렇게 유한합니다. 세상의 음식은 우선 우리들의 미각을 자극하지만, 먹는 순간 그때뿐입니다. 돌아서면 그걸로 끝입니다. 인간의 입이란 것이 간사해서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잘하는 집, 더 특별한 맛집을 찾아가게 합니다.
세상 것들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우선 우리 눈을 현혹시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같다는 것입니다. 신기루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피를 양식으로 제공해 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맛있는 밥상을 한 상 차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의 재료가 예수님 당신의 몸입니다. 당신의 피입니다. 당신의 살입니다.
예수님께서 내어주신 몸과 피를 우리는 생명의 빵, 생명의 피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성체와 성혈이 정말로 생명의 빵이요 생명의 피로 변화되는 기적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똑같이 우리의 몸과 피로 이웃들에게 밥상을 차려줄 때입니다. 우리가 이웃들을 위해 봉사할 때, 우리가 이웃들에게 헌신할 때, 우리가 이웃들을 사심 없이 사랑할 때, 우리가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은 참 하느님의 몸과 피로 변화될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마음에서 이웃들의 굶주림 앞에 나 몰라라 할 때,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우리의 식탁에 초대하지 않을 때,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을 때,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빵은 이웃들을 위해 쪼개어지고, 나누어지고, 그들에 손에 일일이 건네질 때 참된 성체로 변화됩니다.
쪼개어지지 않는 빵은 참된 빵이 아닙니다. 이웃들과 나누지 못한 음식은 참된 음식이 아닙니다. 쪼갬과 나눔을 통해 빵은 거룩한 주님의 몸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웃들을 위해 쪼개어지고 나누어진 우리의 삶은 거룩한 주님의 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영하는 생명의 빵인 성체는 세상의 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빵입니다. 우리가 매일 영하는 생명의 피인 성혈은 세상의 음료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음료입니다. 성체와 성혈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영약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훨훨 건너갈 수 있게 하는 금빛 날개입니다.
순교를 목전에 두었던 이냐시오 성인의 증언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세상의 목표도 세상의 왕국도 제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