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다해 12월 8일 일요일 † [자]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복음: 루카 3,1-6
<자발적 광야의 삶을 사는 이가 존경스럽다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만나게 해 주는 길과 같은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메시아를 만나려면 먼저 세례자 요한을 만나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뇌엔 ‘망상활성계’(RAS, Reticular Activating System)가 있습니다.
망상활성계는 뇌와 외부 자극 간의 필터 역할을 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보를 선별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뇌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다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까요? 바로 나의 ‘뜻’입니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 면세점에서 무언가를 사려 집중할 때는 공항 방송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시계를 보고 출발시간이 지난 것을 알았을 때는 벌써 몇 분째 자기 이름이 불리고 있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당신을 보이셨는데, 어떤 이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였고 어떤 이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는 마치 망상활성계가 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분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들만 보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무엇에 집중하고 있어야 할까요? ‘뜻’입니다.
‘착한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신 사랑입니다. 나에게 이웃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조금도 없다면 예수님은 만날 수 없습니다. 만약 잘 생기고 예쁘고 돈 많고 인기 많은 아이돌을 죽자 살자 쫓아다니는 아이에게 구유에 뉘어진 예수님이 매력이 있을까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처럼 자발적으로 광야를 산 세례자 요한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현대의 세례자 요한을 주윤발이나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 척 피니와 같은 인물들을 들고 싶습니다. 이들은 인기 있는 세계의 거부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광야에 살았던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느냐고요? 먼저 돈에 대해 말해볼까요? 이런 사람들은 모두 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실제로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고 기부할 약속을 한 이들입니다.
그래도 잘 먹지 않았겠느냐고요? 워런 버핏은 오래된 집에서 오래된 자동차로 맥도날드에서 4달러도 안 되는 햄버거로 식사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자기 집도 없이 6천만 원짜리 조립식 주택에 거주합니다. 그래도 명예를 추구했다고요?
워런 버핏은 나이가 들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성공한 것이라 말합니다.
척 피니는 자기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도 나라에서 조사받기 전까지 그가 기부하는 사람인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보인다면 착한 뜻이 들어온 것입니다. 착한 뜻은 이웃을 사랑하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기에 그런 이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착한 뜻을 가지면 자발적으로 광야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많고 쾌락을 찾고 명예나 권력에 집착하면서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만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어디서 만났느냐면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에서 만났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이휘재나 욘사마와 같은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부러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혀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가난하고 절제되고 멸시받는 삶이 부러워졌던 것입니다.
이는 그 책이 저의 시선을 바꿔놓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서 이젠 내가 아니라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임을 알게 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예수님을 성체에서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주일학교 교사 중에 어떤 자매가 수박을 먹는데 빨간 부위가 하나도 없이 갉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왜 저래? 맛있으라고 먹는 건데 저 흰 부분까지 먹다니. 누가 알아준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 책을 읽는 동안 시선이 바뀌었는데, ‘지금 나는 저렇게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저렇게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 신앙이 우리를 광야로 나가게 하여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하게 하는 문입니다. 착한 뜻을 가져야 인간이 되신 착한 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발적 광야를 사는 이들을 존경하게 만들어줄 환경에 자신을 먼저 살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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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